“비판의 기준은 시민사회의 상식, 시대 변화에 따라 보다 좌파적인 위치로 갈 것”

기자명 이경미 기자 (icechoux@skku.edu)

아주 옛날, 왕의 권위에 소위 말하는 ‘맞짱’을 뜰 수 있는 사람은 광대였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웃기기 위한 행위로 용서되는 사람. 그러나 그들이 하는 말속에는 종종, 등줄기가 서늘할 만큼 뼈 있는 풍자가 숨어있곤 했다. 시대가 바뀌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광대는 카드 속으로 들어가 농담하는 사람, 조커가 됐다. 남다른 통찰력과 입담으로 정치인들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광대.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흐르는 까페에서, 카드 속에 숨어있던 진중권씨를 불러냈다.

■진보논객으로 유명한데, 진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대답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답도 아닌, 스콜라철학적인 질문이다.(웃음) 보통 보수는 지금의 체제를 가능한 한 유지시키려는 사람들, 진보는 바꾸려는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큰 과제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보호되지 않고 평등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말이다. 영국의 노동자는 자식들에게 “너는 노동계급이다”라고 가르치지만 우리는 “아빠처럼 되지 마라”고 가르친다. 일하는 사람이 떳떳할 수 있는 자부심, 소수자의 인권 보호와 같은 것들의 총합이 진보다.

■보수세력 뿐 아니라, 진보진영에도 거침없이 비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같은 진보언론을 비판하는 이유는.
신문은 신문이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이유로 조선일보를 비판했는데, 똑같은 일을 한겨레가 하고 있을 때 비판하지 않는다면 내 인격의 일관성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민주노동당(대표: 권영길, 이하: 민노당)역시 문제가 있어서 탈퇴한 것인가.
논객으로서 활동할 때, 민노당 기관지에 글을 쓰는 것과 일반 신문에 기고하는 것은 다르다. 당 기관지의 경우 독자들이 나와 정치적 입장이 같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인데, 타 신문에 글을 쓸 때도 같은 전제를 하면 당파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런데 그러한 전제 없이 글을 쓰면 당에서 난리를 치고, 반면에 보편적인 입장에서 민노당을 칭찬하면 내가 당원이라서 그런다고 하고. 그래서 귀찮아서 나온 것일 뿐이다.

▶ 김영진 기자
■민노당을 여전히 지지한다면, 민노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기적으로는 삼당 체제로 갈 것으로 본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열우당과 한나라당이 남게 된다. 이렇게 양강구도가 확실시 될 경우 신 지역주의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사태를 막아주는 것이 민노당의 역할이다. 물론 보수적이라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당 정권과 열우당의 실정 때문에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민노당이 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 시기는 이미 지났으며 앞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구도가 도입돼야 한다. 그 과도기에서 삼당체제가 이뤄지고 장기적으로는 합리적인 보수와 합리적인 좌파가 공존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진보진영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 낡은 사고방식이 아직 남아있다. 사회주의가 평등의 이념이라고 하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을 이야기해야 한다.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신앙고백과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식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교육의 무료화에 동의를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듯이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또한 운동권은 조직 내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 적이 별로 없다. 민노당에서도 그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형식적으로만 상향식 공천이지 사실은 정파 조직선거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목적에 따라 대중들의 뜻을 가볍게 조작하거나 대중을 동원하려 하는 운동방식이 진보정당을 가로막고 있다.

■본인은 앞으로 어디에도 소속될 생각이 없는가.
굳이 그렇다기 보다는 옮겨다니는 것이다. 예전 안티조선 운동을 할 때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기득권이었다. 정권교체 후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또 선을 옮겨 진보정당의 정치적 진출을 지지하는 것이다. 반수구연대의 논리로 사람들을 열우당이나 민주당 지지에 가둬놓는 것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반동이다.
민노당이 국회에 진출하면 사회당과 같이 더욱 좌파적인 쪽으로 갈 것이고 다음에는 무정부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해 ‘정치자금으로 맥주를 사드리겠다’는 공약을 걸어 사람들을 웃겨 줄 수도 있다. 권위 체제를 우습게 만드는 것이다.

■교수, 문화비평가, 정치비평가, 미학서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모두 다 글을 쓰는 일이고 나는 나 자신을 글쟁이,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읽고 쓰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기도 하고.
이제는 경제적인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기 때문에 미학, 철학 등을 공부하고 살 것이다. 물론 모든 활동이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시 할 것은 최전선에서 사유하고 글쓰고,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대학교수로서 요즘 대학생들에 대한 생각은.
요즘 학생들의 질문은 모두 학점이나 시험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는 완전고용시대였기 때문에 학점 관리에 치중하기보다는 자유롭게 토론하고 다양한 책을 읽었는데…
정부의 가장 큰 실패가 시장원리를 대학에 도입한 것이다. 실용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순수과학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투자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외면 받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모든 학생들이 토플에 매달리지만 실제로 영어구사가 필요한 직업에 종사할 사람은 별로 없다. 이로 인해 인력이 남고 초과 공급된다. 기업들의 전공에 대한 편견도 버려야 한다. 화학공장에서 화학과 출신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러한 외부 요소들에 대학이 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자기가 사회에 왜 필요한 존재인지 입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시대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적인 경쟁력이 창의성에서 나올 것이므로 학생들이 풍부하게 공부하고, 읽고, 사유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과 사회적 현실을 연결하는 고리들을 찾아줘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대학이 그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우리가 똑똑한 사람 하나를 키우는 데 반해 외국의 경우 조직의 협동을 중요시한다. 사회적 생산은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할 때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대학 서열화는 이조시대 과거문화의 잔재다. 어느 학교를 가든 학생들 수준의 차이는 거의 느낄 수 없다. 학벌은 미신이다. 국가가 개입해 사립대 체제를 바꿔야 한다. 대학의 국립화와 평준화, 그리고 과별 특성화가 이뤄지는 것이 대안이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단 대학생들이 취직할 때 기업이 학벌을 반영할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이 그 테두리 안에서 싸울 수는 있다.
또한 학부제를 없애야 한다.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여러 사회적 조건에 의한 강요에 따라서다. 대학은 그런 부분들을 차단해서 학생들이 진정한 선택권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이 한번쯤 해 봐야 할 고민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또 자기 생각이 정말 본인의 생각인지, 혹은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관념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평생 고생하다가 보상받으려 하면 죽을 때가 돼버리는 삶을 살지 않기 바란다. 여러분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 책을 많이 읽어 다양한 사고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양을 넓히는 것 뿐아니라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