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선거의 계절이 왔다. 국가적으로는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고, 학내의 총학생회장 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즈음이면 학내외 모두에서 정치의 열기가 뜨거워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 정치에 대한 열기가 좀처럼 달아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걱정스럽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을까봐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학내에서도 학생회장 선거의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내외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사회적 관심거리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현재 대학생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희생을 치렀는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러한 선배들의 피와 눈물과 땀 위에서 성취된 것이다. 그리고 교내에서 학생회장을 직접선거를 통해 뽑게 된 것도 모두 이러한 사회적 민주화의 일환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성취된 민주주의의 꽃이 바로 선거이다. 우리가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궁극적 목적은 열매를 열기 위함이요, 열매는 꽃이 피지 않고는 열릴 수 없다. 성숙된 민주주의가 열매라면 선거는 꽃이다. 꽃이 없이는 열매가 열릴 수 없듯이 선거를 무시하고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선거에 대해 무관심하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고, 학생회장 선거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이 없다.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학생에게 학생회장에 출마한 두 후보의 성향과 공약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냉소적이었다.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학생의 표정에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고, 오히려 왜 그런 것을 내가 알아야 하는가 라는 표정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민주화가 오히려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는 이율배반성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성을 기다리는 상태인데도 그 책임을 맡아야 할 젊은이들은 정치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기성 정치인들은 정책과 이념에 기반을 두고 공정한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인신공격, 말꼬리 붙잡기, 지역감정 조장 등 부정적 측면만 보여줌으로써 젊은층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학내의 후보자들도 학생들의 변화된 관심과 수요를 고려하기보다는 관성에 따라 학생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실패했다. 학생운동이 학생들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운동을 위한 운동으로 변질되어 버림으로써 그 동력원인 학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판이 지저분해 보여도 우리는 선거를 포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선거를 포기할 수 없다. 이런 부정적인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젊은층은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혁명을 생각하지 않는 한 선거참여 없이는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선거란 어차피 최선을 고르는 작업은 아니다. 가장 잘 될 경우 그것은 차선(次善)을 고르는 것이고, 가장 못될 경우 최악을 피하는 것, 즉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이다. 이 점을 명심하고 보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