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명호 편집장 (freshnblue@skku.edu)

오늘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그 사람에게 어떤 싫은 소리도 하지 않고 아무런 나쁜 감정이 없는 것처럼 대한다. 하지만 당신도 역시나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대한다 해도 정말로 그 사람에게 어떠한 나쁜 생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기준에 차지 못하는 능력을 가졌거나 맘에 들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든지 하는 불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당신은 과연 상대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직접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했을 경우에 결과하는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예상되는 이해득실을 따져보고는 그저 속으로만 삭힐 뿐이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속된 말로 ‘남 걱정을 한다’고 하는 짓을 주로 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하소연을 풀어내는 대상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결국 타인의 뒤에서는 여러 험담 혹은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서 그 사람 앞에서는 웃으면서 대하는 가식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할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기자가 보기에 그런 사람은 정말 소수일 뿐이다. 지나친 단정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본인이 보기엔 그렇다.

약간의 가식은 대인관계를 편하게 해 준다고 혹자는 말한다. 어떤 사람 하는 짓이 보기가 싫을 지경이라도 눈 질끈 감고 넘어가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사여구로 치장한 칭찬과 좋아 보이는 인상으로 막는다 해도 알맹이가 빠진 것은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좋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진정성이 빠진 만남은 단지 서로의 이익만을 뜯어낸 후 뒤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는 모양새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면 가식은 사람 사이를 무미건조하게 만들어 버린다. 서로 좋은 이야기만 주고받는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서로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자신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 조금이라도 갖고 있던 가식을 던지고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을 대해 보자. 당신의 진정이 담긴 충고 혹은 조언과 같은 말들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사람과는 굳이 인간관계를 지속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한 진심이 담긴 말에 대해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다. 이에 대한 반응이 언제가 되더라도, 혹은 정말 오래 걸리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