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명호 편집장 (freshnblue@skku.edu)

돈은 자기가 쓰일 곳을 잘 만나야 제 구실을 하는 물건이다. 물론 근검절약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 없는 소비는 줄여가며 아껴야 할 것이나, 특히 제 쓰일 곳을 잘 찾아야 하는 것이 돈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돈이 주인을 잘못 만나 그다지 좋지 못한 목적에 쓰이거나 엉뚱한 곳에서 발이 묶인 사례를 자주 보게 된다.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부정한 목적으로 쓰인 사례가 얼마 전에 나타났다. 바로 지난달 21일 대선 불법자금 수사 최종 발표가 있었는데, 불법자금을 수수하는 데 있어서 정치인과 더불어 또 하나의 주체인 재벌기업에 대한 처벌은 그다지 강한 편이 못 됐다. 이 때문에 9개월동안 큰 관심을 모았던 대선자금 수사가 ‘봐주기식 수사’로 끝났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상당한 관심을 모았던 삼성그룹에 대한 수사는 이학수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면서 끝이 났다. 검찰에서는 총수가 불법자금 전달에 개입하지 않은 채 이 부회장이 직접 자금을 전달했다고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은 최소한 부하직원 관리를 잘못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8백억원 가량의 채권을 조성해 정치권에 뿌렸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뿐더러 몰랐다 해도 적어도 회장의 개인 돈으로 조성된 자금이었기 때문에 부하직원 관리에 소홀한 셈이다. 그리고 그는 수사가 시작될 무렵 외국으로 출국한 뒤 수사가 끝난 24일 귀국했다. 잘못한 게 없었다면 직접 출두해서 조사를 받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 대목만 봤다면 조사를 피해 도망갔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과거에 했던 “한국 경제는 2류, 사회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은 이것으로 틀려 버렸다. 불법적인 돈을 받는 정치인들이나 돈을 건네는 기업인이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기자만의 착각일까.

그리고 돈이 제 쓰일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한 사례가 본교에 있다. 바로 본교 학우들이 낸 ‘성균’지 발간 비용이다. 작년 2학기에 냈어야 할 73호가 지도위원회와의 마찰로 발행되지 못한 이래 또 한 학기가 지나도록 이야기가 없다가 이제야 발행을 위한 작업 중에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학교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교지가 1년이 지나도록 발행되지 못했던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사실상 학교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 자치언론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 자세히는 교수들로 구성된 지도위원단 ― 측과 기획안에 관해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인데다 협의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발행이 불가능한 현 상황이 한 쪽에서 보면 ‘마찰로 인한 당연한 결과’일 수 있겠지만 다른 한 쪽에서 보면 ‘탄압’이 된다. 물론 교지의 내용 혹은 논조가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교지 역시 학내의 어엿한 언론이다. “언론의 기본을 망각했다”는 식의 말은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학우들이 낸 성균지 발행 비용이 자기가 쓰여야 할 곳에 쓰이게 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