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종합기술원 회장 임관(70) 씨

기자명 김영진 기자 (nowitzki@skku.edu)

한국 사회에서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엔지니어들은 이 나라를 뒤에서 묵묵히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대단한 업적을 남긴 몇 명이 아니면 엔지니어들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한 신문은 극히 적었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분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대를 이을 인재들을 키워내는 대학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에 관한 이야기를 국내 과학기술계의 리더인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에게 들어봤다. <편집자주>

■ 그 동안 엔지니어들은 특정 자리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과거에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공계 출신 CEO도 늘어나고 사회 주요 자리에도 이공계 출신들이 차지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변할 것이라고 본다. 과거 엔지니어들이 요직에 진출하지 못했던 것은 이공계 출신과 인문계 출신과의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생긴 일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문·자연계가 같이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 체제에서는 고교 2학년부터 갈라놓기 때문에 대학 이후로 넘어가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대학에서도 타 계열의 교양수업을 듣게 해 계열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 요즘은 한 사람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살리는 시대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우수 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자원 개발의 측면에서 최상 1∼2%의 인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내 최고 대학 한 두 개를 세계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본다.
고급 인재들의 외국 유출에 대해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외국 유학은 개인 경력을 쌓는 데 도움이 되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유학 갔던 고급 두뇌들이 반 이상 한국으로 돌아온 전력이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인재뿐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도 집중 육성할 분야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집중 육성해야 하는 산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삼성종합기술원(이하 : 종기원) 원장이 됐을 때 주력 육성 산업으로 △IT(정보기술) △BT(바이오기술)  △NT(나노기술)소재 △ET(환경기술) △시스템공학 등을 선정한 바 있다. IT와 BT의 경우 20세기 후반부터 연구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해 볼 만 하다. 하지만 기초학문분야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 최근 이공계 출신들에게 고위 공직을 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데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엔지니어들이 정관계로 많이 진출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도 많이 진출했으며 국무위원도 늘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것이라고 본다. 현재 과학기술중심사회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계속 준비해 나갈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과학기술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직 진출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며  공직 수행을 잘 해야 앞으로도 이공계생의 공직 진출이 이어질 것이다.

■ 요즘 이공계 대학 기피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원인과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수인재의 이공계 대학 기피 현상이 문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공계 내에서 우수 학생을 끌어오기 위한 자체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본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공계 대학이 많아지면서 이른바‘공급 과잉’사태를 맞이했다는 것에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부실한 대학을 구조조정해서 공급과 수요를 맞춰야 한다고 본다.

■ 요즘 기업에서는 대학 교육의 부실함을 지적하고 있다.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이야기인데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학은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며 학생이 사회에서 뜻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기업의 직업훈련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4년제 연구중심대학에서는 국가를 이끌 리더를 키워야 한다고 본다. 만약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대학으로부터 얻고자 한다면 장기적으로 대학과 협동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나라는 산학협동이 약한데 이는 선진국과 상반되는 부분이다. 선진국에서는 체계있는 산학협동으로 양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돈독히 이뤄지고 있다.
현재 성대와 삼성이 세계 수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양자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성대가 리더를 양성해 내는‘대학의 본분’을 잘 지킨다면 잘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종기원에서는 성균관대와 인턴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학에서 공학과 경영학을 같이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공학과 경영학을 겸하는 기술경영적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금융공학과 같은 분야를 개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이 우리나라에서도 활성화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영, 기술 분야에서 모두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본다. 이미 미국에서는 MIT 출신들이 월스트리트가에 진출해 있지 않은가.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 최근 여러 대학에서‘연구중심·대학원중심’대학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대학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부에서 우수한 인재를 교육해 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우수한 학부의 인재들이 대학원을 강화시키지 않는가. 하버드나 프린스턴같은 세계적 명문대학들도 4년제 학부의 교육을 잘 시키기 때문에 명문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학부가 우수해야 대학원도 도움이 되고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 KAIST에서 첫 외국인 총장이 임명돼 화제를 모았다. 로버트 러플린(9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박사를 직접 모셔 온 것인가.

KAIST 총장이 국회로 들어가 총장이 비게 됐다. 그래서 새로 뽑게 됐는데 러플린 박사를 비롯한 세 명의 후보가 있었다. 러플린은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이사가 추천한 후보였다.
개인적으로 러플린 박사에게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다. 외국인이 총장이 되는 것을 걱정하는 일부 분들께 직접 히딩크 감독의 예를 들어 설득시킨 바 있다. 러플린 박사가 한국 이공계에 많은 공헌을 했으면 한다. 국내에 이러한 분들이 계속 들어오면 대학 간에 경쟁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 50년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힘든 일이 많았을 거 같다.

53년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당시에는 배를 타고 갔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상당히 힘들었다. 상당한 모험이었다. 직장을 얻기도 힘들었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랬던 것 같다.

■ 원전공인 기계공학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는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계 분야에 20년 몰두하다 재미있는 것이 학문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생체역학을 함께 공부하게 됐다. 학문 경계선에 있다 보니 많은 것을 얻게 된 것이 장점인 것 같다. 인재의 유형은 한 우물만 파는 I형 인재와 두 가지의 경계에서 일하는 π(파이)형 인재로 나뉘는데 현재는 후자의 경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학생들도 대학에서 연계된 학문을 공부한다면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지금까지 요직을 맡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 동안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활동했던 거 같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동안 내가 근무했던 곳들은 내가 직접 지원한 경우가 아니라 스카우트됐던 경우이다. KAIST가 그랬으며 삼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에 충실하면 언젠간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 언제까지 일할 생각인가.

현재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한다. KAIST, 광주과기원 등의 여러 곳에서 날 부르고 있어 당장 은퇴하기는 힘들 거 같다.(웃음) 실제로 가능하면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다. 만약 은퇴한다면 후학양성 분야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글 : 김영진 기자 nowitzki@skku.edu
사진 : 양태호 기자 algood123@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