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우리 신화』, 신동훈

기자명 이윤영 기자 (sangkmi000@skku.edu)

‘제우스, 헤라클레스, 아프로디테...’를 아느냐고 물으면 6살 된 꼬마도 눈을 반짝이며 “TV만화에서 봤어요”라고 말하겠지만 ‘천지왕. 강림도령, 당금애기, 바리, 오늘이, 내일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학생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들은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밀려 잊혀져왔던 우리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이처럼 외국 신화의 그림자에 가려져 왔던 우리 신화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민중 신화를 만나는 기회
우리 민담, 구비문학을 꾸준히 연구해 온 신동흔 교수가 쓴 「살아있는 우리신화」는 전국 각지에 전해 내려오는 민간 신화를 종합해 일흔 여덟의 신들이 펼쳐내는 25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의 창세신화·영웅신화에서 삼신할매·저승사자 등의 친숙한 이야기까지 작가의 신화적 해석과 구수한 입담이 함께 곁들여져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여러 나라의 건국신화 같은 거대한 신화보다 소박한 인간미와 생동감이 넘치는 민중신화의 미학을 반영하고 있다. 건국 신화는 문헌상 전해져 오는 지배층의 신화이지만 민중신화는 서민들의 삶 속에서 구전돼 온 옛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기에 이 책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우리 신화의 원형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가 부럽지 않은 우리 신화
미모를 자랑하고 질투 많은 그리스·로마신화의 헤라나 아프로디테와는 달리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막막부인이나 궁상이 아내와 같은 여신·여인들은 지조 있고 강하며 현명하다. 헤라클레스 부럽지 않은 영웅들도 우리 신화에 있다. 저승사자와 싸워 단숨에 이기고 염라대왕을 제압한 강림도령, 불칼을 휘두르는 흑룡과 싸워 이긴 뒤 백두산 천지를 만들어낸 백장군 등이 바로 그들이다. 뿐만 아니라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서 아비에게 버림받지만 15년 후 상봉한 병든 아비를 위해 저승의 약수를 구하러 떠난 바리 이야기는 외국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복수’보다 ‘용서’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 신화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을 뛰어넘어 신이 되기도 하지만 그 보다 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신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 속에서 신성이 피어나기에 우리 신화에는 유난히 고난과 시련의 이미지가 뚜렷하고,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가 된다. 이 때문에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그리스·로마에 등장하는 권위적인 모습도 아닌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기괴한 모습도 아닌 소박하고 정겨운 신으로 느껴진다. 「살아있는 우리 신화」는 우리 신화의 원형을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체계화시키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마지막 장인 ‘새로 여는 이야기’에서는 신들의 세상을 그려낸 신화지도와 신들의 계보와 역할을 정리해 우리 신들이 존재한 장소와 신들 사이의 상호관계·위계 질서와 갈등 관계 등도 함께 보여준다.  더불어 무신도 관련 자료를 보고 그린 11컷의 그림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우리 신화를 맘껏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 신화를 살려야 할 때
잊혀진 신화란 결국 죽은 신화가 아닐까? 아득히 먼 옛날부터 겨레의 가슴속에 강물처럼 흘러 내려온 그 이야기, 죽은 것처럼 보이는 우리 신화가 아직 살아 있음을, 그리고 살려 내야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죽은 우리 신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 신화」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