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말하는 연기자, 권해효씨

기자명 이경미 기자 (icechoux@skku.edu)

■매우 다양한 사회 사안들에 관여하고 있는데.

전쟁반대나 호주제 폐지와 같은 일들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기본적으로 차별이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누구에 의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이라크 사람들은 죽어도 되는 사람들인 양, 뭔가 나쁜 사람일 거라는 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본다. 저항세력이란 말 역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가진 한가지 관심은 그러한 편견과 차별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약육강식의 질서에 대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것. 이런 이야기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칙 아닌가. 국가와 절대 권력에 대해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왜’라고 질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면 거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호주제 폐지와 같은 것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견들 중에도 타당성을 가진 것이 있지 않나.

주로 현실정치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예컨데, 이상적인 주장보다는 현실적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건 정치인들이 반대세력과 정치적 타협을 시도할 때 사용하는 논리다. 이들에게 원칙은 무시되기 일쑤다. 국민이나 우리들은 그 정치인들의 뒤에서 원칙을 세워줘야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국가보안법(이하:국보법)이다. 국보법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핏 들으면 그 법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실에 기준해 얘기해야 한다. 과연 국보법으로 국가를 지킨 적이 있는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이 그 법에 의해 얼마나 희생당했는가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96년도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에서 주최하는 일일 감옥체험에 참여했었다. 당시 민가협의 어머니들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나는 단순히 양심수 석방을 위한 행사로서 일일 체험이라는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일뿐인데, 감옥에 갇힌 아들과 나를 동일시하는 어머니들을 보며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간수들이 괴롭히면 어머니들이 내 새끼 때리지 말라고 혼을 내던 모습이 선뜻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있다.

또 한가지 기억은 1997년도 5월, 성균관대학교에서 전교조가 주관하는 스승의 날 행사가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의 사회를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당시 전교조가 불법단체여서, 전경들에 의해 학교 출입을 원천봉쇄 당했다.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모여 든 어린 학생들이 전경들에 의해 쫓겨나 대학로를 헤맸다. 그렇게 5월의 일요일을 보내고, 비록 행사는 하지 못했지만 전교조에서 보낸 감사패를 받았다. 감사패에는 ‘통일된 조국은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문구는 굉장히 충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조국이 날 기억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나와 관련없는 일들을 일부러 외면하고 모른척 하며 지냈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일부러 외면해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80년대 중반의 대학은 반독재, 통일, 전대협과 같은 말들이 일상화 돼 있는 공간인데 한번도 거기 참여한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대학교 1학년때 단대별, 과별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사회과학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 형식이 주로 선배들에 의해 주입되는 것이었다. 그런 토론 후에 뒷풀이로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더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관계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파쇼타도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삶의 태도는 훨씬 더 파쇼적인 상황들을 보며 당혹스럽기도 했다. 일부러 외면했다기 보다는, 한발짝 떨어져 심정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비록 내가 나서서 짱돌은 못 던져도 대출은 해주는 마음으로.

■그렇다면 언제부터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냈나.

2001년도 안티조선 영화인포럼을 하면서부터다. 내가 생각하는 조선일보는 이렇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지금까지도 대학 등을 다니면서 안티조선 뿐 아니라 선거참여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생각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반드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중간쯤에 있다고 할까. 생각과 행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동하는 사람들은 절박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나는 그만큼 절박하진 않아도 중간 정도의 절박함은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는 누가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하는가 이다.

■중간쯤에 서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직업이 배우이고,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배역이 아닌 자연인 권해효로서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연기를 할 때는 배역을 앞에 세우면 되지만 사회자로서 무대에 설 때는 그럴 수 없어 불편하다.

때로는 행동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민가협에서 양심수 석방을 위한 콘서트의 사회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 역시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거절했다. 콘서트라는 공연의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도 내용은 공연이 아닌 주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생각됐다.

■거절의 이유가 특이한데.

연극이나 드라마를 포함한 공연이 문화 예술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주장,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맞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말하는 드라마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하는 작품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다. 어떤 드라마가 예술 작품이 되느냐 혹은 하나의 주장이 되느냐의 차이는 미묘한 것이다. 국보법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다룬 드라마는 주장이 되기 쉽다. 이런 드라마는 시의성에 매달리게 되므로 다음 세대에게는 공감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에 대해 말하는 드라마는 백년이 지나더라도, 시공을 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다. 매체를 통해 주장을 날로 드러내지 않고 예술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 교훈극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방법으로 시청자를 가르치려 하는 스타일은 싫다.

■그렇다면 정치성의 실현보다 연기가 우선인가.

정치란 우리의 모든 생활에 관련돼 있다. 정치를 삶과 다른 일로 거리 두지 말아야 한다.

내가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기자로서 큰 과오나 실패 없이 더불어 경제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의 미덕은 지속성이다. 오랫동안 운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내가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부분은 미흡하고 적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이슈를 찾아내고 만들어 낼 때 알리는 역할을 내가 맡으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체력을 키우는 방식은 연기자로서의 내 연기 영역과 생활에 보다 충실하는 것, 그래서 내가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놓치지 않고 좋은 드라마나 공연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 원칙은 어떤 일도 연기 일정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비록 바람이긴 하지만, 연기란 점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기가 일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우리가 왜 연기자를 예술가라 부르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보다 깊고 풍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연기자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서 시청자들을 일상에서 가져보지 못한 순간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일상성을 뛰어넘는 순간, 연기는 예술이된다.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은 1학년때부터 취업 준비로 도서관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특화되지 않은 경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전공에 대해 미친 듯이 고민해보고 빠져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또한 소비가 미덕인 양 여겨지는 사회에서 대학생 시절만이라도 사회의 소비문화와는 조금 동떨어진 생활을 해 보라고 제안한다. 덜 쓰고 가난하게 지내보기,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기. 학생시절만큼은 돈보다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