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 최인호

기자명 함초아 기자 (choa84@skku.edu)

궁복:아가씨..아가씨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온 세월이 얼만데..그리 말씀하십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정화:꼭 그리하셔야 합니다. 저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그만 잊으셔야 합니다. 저도..지난 인연은 잊겠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무협멜로 드라마 〈해신〉의 두 주인공 궁복(장보고)과 정화의 애절한 이별 장면이다. 장보고의 일생을 다룬 이 드라마는 실감나는 액션과 아름답고 독특한 의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원작인 최인호의 장편소설 「해신」에는 장보고의 연인인 정화도, 무장들의 화려한 경합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소설 「해신」은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게 장보고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일본 무사가문의 수호신 장보고
소설 「해신」속의 ‘나’는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 다케다 가문의 시조가 자신의 성을 ‘신라사부로’로 바꾸었던 것에 의문을 품고 일본으로 추적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신라사부로’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 비밀을 밝혀내게 되는데 과정이 추리소설 못지 않게 제법 흥미진진하다.
마침내 ‘나’는 ‘신라사부로’라는 이름이 그 가문의 수호신이었던 ‘신라명신’에서 따온 것이며 이 신라명신이 바로 장보고임을 알아내고, 그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다.

드라마에선 느낄 수 없는 매력
장보고는 우리나라 역사에도 ‘청해진 대사로서 해적을 소탕한 신라의 무장’ 정도로 단편적인 기록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역사서의 작은 한 구절이라도 발굴하여 1200년 전의 신라무장을 동북아 최대의 해상왕으로 재탄생시킨다.
자칫 지나치게 상세한 묘사로 허구적으로 보일 것을 우려해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그 당시 기록을 함께 보여주며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그 상황에 사용했을 법한 〈논어〉,〈한서〉,〈시경〉 등 고서에 나오는 고사성어를 자주 인용해 마치 삼국지를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비록 애절한 로맨스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런 다채로운 고사성어와 고전시가 드라마에선 느낄 수 없는 소설 「해신」 만의 매력이다.

소설 속 염문 VS 드라마 속 염문
소설 종장에서 장보고는 자객이었던 염문의 손에 죽고 만다. 이는 실제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이 염문이란 인물은 드라마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범죄낙인으로 얼굴이 문드러진 괴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소설 속의 염문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드라마의 염문(송일국 분)은 뛰어난 무예와 평생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순애보로 여성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의 염문은 소설의 괴인자객 염문과 달리 정화를 두고 장보고와 삼각관계를 보이는 비중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도해가 낳은 세계인 장보고
작가는 장보고를 상업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무역왕이자 훌륭한 무장이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조정에 반기를 든 반역자로 남아있는 역사 속의 장보고를 부인하고, 그는 패배자로 낙인찍혀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장보고는 뛰어난 해상무역가였고, 궁복이라 불릴 정도로 활을 잘 쏘는 뛰어난 무장이었다. 하지만 과연 장보고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암살 당한 것일까? 장보고에게는 과연 정치적 야망이 없었을까?
그는 자신의 딸을 왕족과 결혼시켜 왕비로 만들려 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왕위쟁탈전에 개입했다. 안타깝게도 이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조정은 장보고 세력에 불안을 느껴 자객 염문을 통해 그를 암살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지만 책에는 온갖 미사여구로 미화된 장보고만 있을 뿐 그의 어떠한 정치적 야망도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장보고의 정치적 욕망과 역사 속 평가가 어떻든 청해진을 통해 세계로 가는 문을 연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 보기 드문 개척자요 진보적 세계인이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