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 서긍

기자명 함초아 기자 (choa84@skku.edu)

9백년전 고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서긍의‘선화봉사고려도경’(약칭:고려도경). 당대에 쓰여진 고려관련 사서로는 유일한 이 고려도경을 우리 학교 고려사 연구팀이 5년 간의 노력 끝에 그 번역본을 펴냈다. 특히 고려도경은‘건국’부분에서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밝히고 있어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하는데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대적으로 재탄생된 고려도경
이미 고려도경의 번역본은 국내에 여러 권 나와 있지만 그 동안의 것은 한학 전공자들이 원문을 그대로 해석해 놓은 한문의 훈독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번역본은 우리 학교 조동원(사학) 교수, 박물관 김대식 학예실장 등 고려사 전공자들이 펴낸 것으로 그 이전의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이와 관련 박물관 김대식 학예실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예를 들어‘채여’는‘채색가마’로 ‘견여’는‘어깨로 메는 가마’로 바꾸는 등 고어를 현대어로 풀이하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전의 번역본은 고려도경 원문의 판본 하나만을 번역하는데 그쳤으나 이번 번역본은 고려도경 세 가지 판본의 원문을 비교하여 각주에 실었다. 또한 각주에 각 번역문들의 틀린 부분과 새롭게 연구돼 첨가된 부분도 함께 싣는 작업을 했다.

고려 종합보고서
고려도경은 고려의 건국에서 시작하여 △왕실 △세력가 △의례 △병기 △바닷길 △백성들의 생활 등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는 고려에 대한 종합보고서이다. 현존하는 고려 관련 사서에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있지만 이는 2백여년 후인 조선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당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고려도경은 외국인의 눈으로 고려라는 낯선 나라의 모습을 꽃병 하나 하나에서 사소한 풍속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더군다나 서긍 사신단은 첩보의 목적으로 왔다고 하니 묘사와 분석의 치밀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연구팀은 원본에 없는 서긍 일행의 여정도를 제작해 실었다. 김 학예실장은 “해도를 비롯한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고 주변지역 묘사를 하나하나 분석, 해당지역을 추정하는 작업을 했다”며“이 여정도로 서긍 사신단의 출발지와 도착지의 지명과 자세한 날짜까지 5개월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대 중국인의 고려인식
고려의 선조는 주 무왕이 조선 제후에 책봉한 기자인데, 이름은 서여(胥餘)이고, 성은 자(子)이다. 주, 진을 거쳐 한고조 12년(BC 195)에 이르러서 연 사람 위만이 망명해 왔다...중략...고주몽은 흘승골성에 이르러 살면서 스스로 그곳을 고구려라 불렀다. 그 때문에 ‘고’(高)로 성씨를 삼았으며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다.
고려도경 제 1권인 고려의 ‘건국’ - 책봉의 연원에서는 이처럼 고려를 고조선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조동원 교수는 “주목할 점은 이것이 고려인이 쓴 것이 아니라 서긍을 포함한 그 당시 중국인의 인식으로 쓰여진 것”이라며 “중국인들도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인정한 것으로써 그 당시 고려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압록강을 포함한 고려의 영토를 자세하게 기록한 부분도 당시 중국인들의 고려 인식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고려도경에서 나타나듯, 9백년전 중국인은 고구려의 계승국, 고려를 알고 있었다. 고구려사 편입을 외치는 현 중국학자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