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인터넷이 활자매체의 목을 조르고 있다.” 『인물과 사상』 발행인 강준만 교수는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1997년에 창간된 이래 통권 33호를 낸 이 잡지는 ‘실명비판’이란 편집 원칙을 견지하여 우리 사회의 성역을 깨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 잡지가 태어난지 8년만에 종언을 고했다. 2005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다시 강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책은 신속성과 영향력, 만족도 등 모든 면에서 인터넷의 경쟁상대가 되질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강 교수는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여 『인물과 사상』을 종간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우리 시대의 주요 인물에 대한 비판적 조명을 시도했고, 사회적 요구에 밀착한 아젠다를 제출해 온 창의적인 활자매체가 아니던가. ‘1인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던 새로운 실험이 끝내 좌초하고 말았다. 위기는 이 잡지 하나에만 닥친게 아니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역사비평』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왔던 손꼽히는 활자매체들도 똑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그뿐인가.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출판시장의 불황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지속되고 있다. 그 대신에 인터넷 신문, 포탈 사이트, 웹진, 온라인 게임, 인터넷 소설, 디지털 영화 등 전자 영상시대의 새로운 매체가 득세하고 있다. 쇠락하는 활자 매체의 신음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이 변화를 거역할 수는 없다. 전자 매체의 힘이 갈수록 위세를 더할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면 디지털 기반 사회에서 활자로 찍혀 나오는 모든 책과 문서는 소멸되고 말 것인가?

주변을 둘러보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면서도 활자 매체인 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단지 습관 때문에 그러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책은 인터넷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활자매체는 인터넷과는 달리 인간의 감각 기관을 고루 자극한다. 시각만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다.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에서 맡게되는 특유의 냄새를 기억하는가. 서점에서 큰맘먹고 구입한 새책의 첫 장을 넘길 때 손끝에 전해져 오는 부드러운 질감을 기억하는가. 오뉴월 더위 속에서 창문을 열고 책을 읽을 때, 창문너머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천지를 뒤덮는 매미 소리가 들려 오지 않던가. 그렇다. 책에는 그러한 공감각적인 기억이 담겨 있다. 『삼국사기』에는 도서관 서가의 묵은 곰팡 냄새가 담겨 있고, 박경리의 『토지』에는 매미 소리가 실려 있으며, 『다빈치 코드』에는 손끝에 전해져 오는 매끈한 질감이 묻어 있는 법이다.

우리는 활자 매체의 효용이 인터넷 기반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할거라고 믿는다. 공감각적인 기억과 더불어 얻게 되는 독서 체험은 우리의 사유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를 통해서 얻는 지식은 혈관 구석구석으로 녹아 들어가 우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디지털 환경 하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믿음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