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A.Huxley)

기자명 함초아 기자 (choa84@skku.edu)

아이러니(irony)는 일반적으로 진의와 반대되는 표현이다. 이는 간접적인 비난의 뜻을 암시하는 점에서 풍자와 통하며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이를 즐겨 사용한 것은 아이러니가 갖고 있는 비평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아이러니는 그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헉슬리가 그리는 2500년의 우리 지구는 결코 ‘멋진’세계가 아니다. 그 곳에는 문학도 없고 종교도 없으며 괴로움과 고통도 없다. 오직 삶의 안락과 결정된 행복만 있을 뿐이다.

주체성 상실된 전체주의 국가
헉슬리가 그리는 가상세계의 틀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세계 국가 체제인 이 세계의 시대구분은 A.D가 아닌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이름을 따 ‘포드 기원(F.D)’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은 ‘오 하나님 맙소사’가 아닌 ‘오 포드님 맙소사’라고 탄성한다.

이 미래사회에는 인간을 만드는 ‘보카노프스키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하나의 난자에서 하나의 태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난자가 증식을 하여 분열돼 한 난자에 96명의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 과정을 거치면 아기들은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 아기들은 감마, 델타, 입실론 계급으로 나뉘어져 각각 주어진 일들을 하게 되며 세계 국가의 사람들은 이 과정을 자연에 가해진 엄청난 ‘진보’라고 말한다.

이런 체제라면 현대 국가에서는 하급계층들의 반발을 사겠지만 이 미래사회는 태어나서부터 각 계급에 맞는 조건반사교육을 받아 그 계급으로 태어난 것을 당연히 여기고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런 주체성이 상실된 비인간적인 체제는 이 세계국가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일상인 것으로 여겨진다.

자유를 상실한 유토피아 사회
이들에게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만성 스트레스’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기분 나쁘거나 불안할 때 복용하는 ‘소마’라는 알약은 열 가지 우울증을 치료해주며 현실도피와 유쾌한 행복감을 준다.
하지만 옛 문명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온 야만인 ‘존’은 소마를 거부한다. 그는 현실도피의 환각에 빠지는 소마를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죽이는 약이며, 독약이라고 외친다. 존은 소마뿐만 아니라 문명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또한 이 세계국가에서는 문학이란 낡았으며 누구나 행복한 세계에선 필요치 않은 것이라 하여 금지시킨다. 하지만 작가는 존을 통해 셰익스피어 소설의 문구를 곳곳에 등장시킨다.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문학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국가에서 셰익스피어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극적인 『오델로』와 『햄릿』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불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세계국가가 더 비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이 이미 행복하도록 결정돼 있고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자유마저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멋진 신세계』를 작가의 천재적인 상상력으로만 간주할 수 없는 건 21세기 현재 지구에서 ‘보카노프스키 과정’ 과 맞먹는 유전자 조작, 인간 복제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추종뿐만 아니라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우울증을 잊게 해주는 ‘소마’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일까? 그들은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고민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말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자기를 잃어버리게 하며 고민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존은 이 완벽해 보이는 환상적인 유토피아 세계에서 “저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저는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를 원합니다. 저는 선을 원하고 죄악을 원합니다”라고 외친다. 존은 불편한 삶과 불행을 원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고통도 겪고 절망해볼 수도 있는 자유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어려움 속에서 고통을 겪고 절망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끝내는 극복하듯이 말이다.
그럴듯한 유토피아 세계지만 모든 것이 결정돼있어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 자유마저 없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멋진 신세계’는 더할 나위 없는 비극적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