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경미 기자 (icechoux@skku.edu)
얼마 전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선거법 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 1백50만원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조승수 의원은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울산의 지역현안이었던 음식물 자원화 시설 설치와 관련 지역 간담회에서 “주민의 동의 없이 이 시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책과 입장을 밝혔다.
1심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은 선거법 위반 행위가 선거구민의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분위기를 반전시킴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친 정도, 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이후 같은 유형의 선거범죄가 재발될 소지가 있는 점, 피고인이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한 점, 위 사업의 중단 등 이로 인한 막대한 파장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점, 기타 이 사건 이후의 정황 등 제반 정상을 고려할 때 당선 무효 형을 선고함이 상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조 의원이 구청장 시절부터 직접 추진해 왔으며 꾸준한 논의가 있었던 사안이다. 또한 3월부터 5차례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 의원에 대한 지지도는 여타 정당 후보들에 비해 적게는 5%에서 크게는 약 30%의 차이로 항상 1위였다. 선거 결과 조 의원은 한나라당 후보를 7천2백표 차이로 따돌렸는데, 문제가 됐던 중산구 지역 주민의 전체 5천5백표를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가져가더라도 조 의원의 당선은 정해진 것이었다.
조 의원은 금품살포나 향응제공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간담회에는 다른 당 후보 역시 선관위의 묵인아래 참석했었다. 지역 현안들에 대해 당의 정책적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응당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할 정치 활동이며, 그를 통해 정책의 내실화를 다지는 것은 장려돼야 할 정치풍토다. 이러한 ‘사법독재’는 사전선거운동혐의로 기소됐던 다른 당의 의원들의 재판 결과와 비교해 볼 때 더욱 두드러진다. 작년 3월동안 7차례에 걸쳐 지역 주민들에게 백여만원에 이르는 식사를 대접하고 지지를 호소했던 집권 여당의 김동철 의원은 겨우 7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당의 한병도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소속 국가균형발전위 위원인 것처럼 사무실 개소식을 열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러나 1심에서 1천만원이던 벌금이 항소심에서는 80만원이 됐다.
무엇이 유독 조 의원에게만 법이 야박하도록 만들었을까. 국회법에 의하면 10인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만 의제 발의가 가능한데, 현재 민주노동당의 의원이 딱 10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 의원이 의원 자격을 상실하면 민주노동당은 단독으로 의제 발의조차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간 준비해 왔던 진보적인 입법안들이 상당수 발의도 되지 못한 체 무산될 것이다. 기껏 반 세기만에 얻게 된 ‘진보정당 원내진출’이라는 정치적 성과는 무효가 된다.
이미 삼권은 하나의 길(금전)로 통한다는 것을 지겹도록 느껴왔지만,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이 이러한 환멸을 지워주길 바란다. 이번 재판의 역사적 의미는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는 그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