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개정된 국적법의 시행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가 떠들썩하다. 지난 5월 4일 국회를 통과한 국적법 개정안이 부모의 일시 체류 중 해외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남자가 병역의무를 마치기 전에는 한국국적을 버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달 평균 20여건에 불과하던 국적포기 신청건수가 급증하여 급기야 5월 23일까지 1692명의 국적포기자가 생겨났다. 국내의 국적포기신고자 1287명 가운데 16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국적 포기자의 부모 상당수가 기득권층이라는 것도 확인되었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자료만 보더라도 국적포기의 절대적인 이유가 병역기피에 있었다는 것이 명약관화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비난일색이었다.

무릇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국적의 취득은 물론이고 국적의 포기가 개인의 선택적 문제인 점에는 의문이 없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국적의 취사선택에 대해 감정적 대응을 하거나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비합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적포기사례에 대한 전국민적 분노와 비난 그리고 멸시도 극단에 가까운 감정적 반응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건전한 비판마저 설자리를 잃게 할 정도의 가공할 만한 힘의 원천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병역문제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재외동포를 최대한 껴안으려는 세계적 흐름, 국적변경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 신상공개의 위헌소지, 인민재판식의 어두운 세계관의 그림자 등 어떠한 반박논리도 일거에 잠재워버리는 강력한 최면제가 바로 병역문제이다. 

병역문제만 나오면 한국인의 두뇌작용에서 이성적 작용은 마비되고 감정적 작용만 극대화된다는 사실이 이번 국적 사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을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재외동포법개정안’의 추진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병역문제는 한국인의 유전자 특질로 자리 잡은 사회생물학적 요소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이러한 ‘병역문제의 특수성’이 병역의무의 예외불인정과 결합되는 ‘병역문제의 절대화’로 이어가는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문제의 특수성은 국적선택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사회적 성격으로 전화시킴으로써 긍정적인 차원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병역기피목적의 국적이탈에 대한 비난여론을 불합리한 특권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목소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 사회정의가 특권을 앞세운 개인적 이기심을 몰아내려는 성숙된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완벽한 고통분담만을 요구하고 개인의 선택의 문제를 전적으로 도외시하게 되면 우리는 또 다른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가 있다. 사회적 고통의 예외 없는 분담을 강요함으로써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사회를 우리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부른다. 그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병역문제를 절대화시킴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소수자들을 포용해야 할 관용의 정신마저 상실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