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환 유학동양학부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꽤 오래된 이야기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유학을 시작하던 해, 내가 살던 기숙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그곳은 이름도 근사한 ‘늑대가 먹는 샘물이 있는 길’이라는 동네에 있는데 하이델베르크성을 발밑에 두고, 건물 뒤를 내려다보면 넥카강이 흐르는 멋진 곳이다. 어느날 밤 다른 건물에서 저녁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나와 기숙사 관리인 사이에 사건이 발생하였다. 건물 밖에서 3층의 사람을 부르는 나의 고함이 문제였다. 둘의 언쟁은 악화되어 육박전 직전까지 발전되었고 기숙사 전체가 뒤집어지고 결국 경찰차가 오고 나서야 한밤중의 소동은 끝이 났다. 광주의 학살을 소문으로 듣고 독일로 떠났던 20대 후반 열혈의 ‘무등산 타잔’ 같은 조선인과 라인강의 기적 이후 한국처럼 혼란하지 않고 안정된 사회에서 성장한 독일인과의 갈등이다. 문화와 생활습관의 차이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제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 눈이 파란 독일인처럼 문제를 제기할 것 같다. 문화의 차이일수도 있으나,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성이 문제이다. 그런 사건으로 시작한 나의 유학생활 10년은 일상의 생활과 공부가 자연스럽게 일치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문제의식은 철학에서 우선 동서양의 비교를 통해 자기 정체성 확립 추구로 이어졌다. 철학적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질 때 철학함의 현재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문하였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 가졌던 모호한 반감이 공부하면서 점차 명확해졌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철학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반성이 현실적으로 요청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의 학창시절은 유신체제이었고, 그와 같은 현실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문화권에서의 연구, 국내 현실의 정치적 모순이라는 2가지 문제가 내 공부의 조건이었다. 서양인의 사고틀에서 동양의 사상을 수용할 때 문제점을 오늘의 조건을 감안하면서 분석하는 것이 우선 나의 과제였다면 요즘은 거꾸로 근대화과정에서 동양인들이 서양의 사상을 수용할 때 갖던 문제와 한계를 관심있게 분석하고 있다. 나의 눈으로 동시에 남의 눈으로 한가지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비교철학의 방법이다. 그런데 사실 분석하는 작업은 순수 사변적 단계에 머물러서는 현재적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다. 이론은 실제 생활하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특히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분석하고, 동시에 연구자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종합될 때 그 의미가 역사성을 갖는다.

 

인간의 사고에서 비교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적어도 영아기의 본능적 단계를 지나면 누구나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성숙하게 마련이다. 비교하는 목적이 자기만을 위한다면 너무 이기적이다. 살아가면서 나는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으나 특히 동양적 윤리관에서는 너무 명확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은 매우 자기중심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비교의 목적은 결국 공존을 위한 작업이다. 자기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과 사상을 존중하는 법을 학습하는 것이 근대성(현대성)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합리성의 이름으로 타자를 배제하는 사회, 그러한 사고와 가치관이 현재 한국사회와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지나친 판단일까? 다른 문화권에서 느꼈던 배타성을 이제 한국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더 심각하게 나는 체험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리 일상의 머리와 가슴에 각인될 필요가 있다. 타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에 대한 자각이 모든 학문함과 개인의 일상 생활에서 냉정히 성찰되어야 한다. 비교철학은 이러한 과제를 위해 한가지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새학기를 맞아 모든 성균인의 건투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