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아돌프 히틀러는 유태인을 학살하고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게르만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며, 가장 우수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양의 열강들은 약소국을 지배하기 위해 이처럼 자신의 민족과 문화를 우월하게 여겼고, 약육강식을 당연한 결과로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에 날카로운 근거의 칼날을 세우는 책이 바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다.
B.C. 11000년, 출발점에 서다
현생 인류가 등장한 5만년 전 부터 최종 빙하기가 끝난 B.C. 11000년경까지 모든 대륙의 인간은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류가 모두 동일한 문명의 출발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륙과 민족 간의 문명의 차이는 어떤 이유로 언제부터 발생한 것일까? 재레드는 B.C. 11000년부터 근대가 시작되는 150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의 발전 속도를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 시기에 어떠한 지리적 환경에 놓여있었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로 질주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지리적 환경, 즉 식물 경작의 유무를 가장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현재 주식을 위해 생산하는 식물의 80%가 12종 뿐 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선사시대에 인간이 섭취할 수 있고 재배할 수 있는 식물은 많지 않았다. 또 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알맞은 기후를 갖춘 지역은 더 적었다. 이렇게 축복 받은 땅은 문명의 발생지를 비롯해 현재 유럽이 위치한 지중해 연안으로 추측되다. 식물의 재배가 가능해 지면서 정착 인구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됐고 이어 계층사회가 만들어 졌다. 다양한 인간과 다양한 사회제도가 생겨나면서 인류는 기술을 발전시켜 쇠를 이용해 총기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또 작물화 된 식물과 함께 야생동물을 가축화시켜 인간에게 전염되는 치명적인 병균까지 생산하게 된다.
지리적 환경으로 뒤바뀐 운명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의미있는 의문과 제레드가 보여주는 다양한 예시들은 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중에서도 유럽과 중국의 뒤바뀐 운명에 관한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통일된 국가였다. 그래서 1400년경 중국 황제에 의해 선단파견이 중단된 뒤 조선소가 모두 문을 닫았고 중국은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유럽은 제 각기 다른 나라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탈리아인이었던 콜럼버스는 자신의 탐험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왕을 찾아 여러 나라를 방황하다가 스페인 왕의 도움을 받게된다. 이것이 유럽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드는 역사적인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에도 국가의 제도가 아닌 환경 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일까? 그렇다. 중국은 해안선이 완만하고 지리적으로 내부의 장애물이 크지 않아 통일이 가능한 지리적 구조를 가진 나라다. 반면 유럽은 들쭉날쭉한 해안선에서 보듯 섬에 버금갈 만큼 고립돼 있는 큰 반도 다섯 개 연결돼 있다. 각각의 반도는 한 나라로 통일될 수 없었고 각각 독립적인 언어와 민족집단이 존재했다. 만약 콜럼버스가 통일된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훌륭한 역사가를 기억하며
훌륭한 역사가는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겸비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갗뿐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것 같은갗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으므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났던 일은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 행동에 역사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문헌은 없다 .
- 모티머 J 애들러
모티머에 의하면 재레드는 훌륭한 역사가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역사의 흐름에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분석을 시도했다. 또 ‘왜 불평등의 역사를 낳았는가?’라는 인문학적인 의문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해 풀어냈다는 점은 매우 훌륭하다. 재레드는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개인적인 능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지리적인 환경이 만든 문명의 발달 차이를 민족의 우월성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지금도 여전히 민족간의 문화적·종교적인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 가을 이러한 분쟁을 넘어 다른 문명의 다른 인종도 모두가 같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한 한 인류라는 재레드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