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환 생명공학부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휴교령으로 암울했던 80년대,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끼면서 시작된 나의 방황은 1992년 미국 유학의 길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끝이 났던 것 같다. 유학을 결정한 후 나름대로 연구 분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했지만 막상 미국에 도착해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단순히 좋아하는 분야나 현재 각광받는 분야가 아니라 그 분야가 어느 수준까지 발달했고 향후 얼마나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내가 세상에 전문인으로서 우뚝 서야할 시점인 5년에서 10년 후를 떠올렸을 때 이미 안정 궤도에 오른 분야보다는 당시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의공학”이라는 분야가 생소하면서도 인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나의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렇게 나와 의공학의 인연(因緣)은 시작되었다.

‘600만불의 사나이’는 더 이상 과거 공상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생체공학 인간의 등장이 미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잃었던 시력을 일부 되찾고 청각장애인이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을 추구하게 되고 이에 크게 기여하는 학문이 바로 의공학이다.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실생활에서 많이 접하고 있는 것들이 의공학의 연구 대상들이다.

생체에서 발생하는 심전도, 뇌전도, 혈류 속도ㆍ유량 등의 다양한 신호를 검출하여 진단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생체신호처리(생체계측)와 모델링을 통해 구현이 불가능한 조건에서의 생체의 반응과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실제 생체 시스템의 결과를 예측 가능케 하는 모델링이나 시뮬레이션, 생체 내의 유체 및 고체에 대한 역학적인 분석을 통해 동맥경화를 예측하거나 인공 관절의 설계 등에 이용할 수 있는 생체역학과 컴퓨터의 발달을 기반으로 한 초음파, X선, MRI, 핵의학 및 현미경 영상 등 의학 분야의 새로운 영상 촬영 및 처리, 분석 방법 등에 관해 연구하는 의학 영상 처리 및 분석이 그 예이다. 또한 근육마비 환자에게 전기자극을 주어 그 기능을 회복시켜주거나 의수 및 의족에 대한 연구 등을 중점적으로 하는 재활공학 분야, 인공 심장이나 판막, 신장처럼 각 기관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적인 생체장기에 관한 연구를 하는 인공장기 분야, 골프나 보행 등의 운동 분석이나 의료 환경에서 발생하는 의료정보의 체계적인 관리와 처리를 위한 시스템 구성 및 재택 진료 시스템 개발 등이 있다.

이처럼 의공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 분야가 다양하고 그만큼 다양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학문으로 현재에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인간의 삶의 질적 향상의 욕구가 영구 지속되는 한 거듭 발전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이상과 현실 속의 괴리를 느낀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반드시 온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처럼 오랜 방황 끝에 오게 되더라도 절대 절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을 보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판단력과 열정만 있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그로인해 인간도 변하고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도 변한다. 더구나 인터넷의 발달로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할 분야의 미래를 감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열정과 패기를 갖고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멋진 성균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