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동(중문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불과 이십 년전만 해도 중문학과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던 '냉문(冷門)'의 학과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중국에 대한 관심과 중국어 학습 열기가 뜨거운 '열문(熱門)'의 인기학과로 위상이 제고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도 같은 이러한 변화는 전공자로서 흐뭇한 일이다. 하지만 수요와 관심의 증대에 비례하여 기대와 요구도 높아지므로 우리학생들은 더욱 더 분발해야 한다.

언어능력은 말하기ㆍ듣기ㆍ쓰기ㆍ읽기 네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말하기 능력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어 학습의 궁극적 목적이 외국의 선진 문화ㆍ기술ㆍ학문 등을 수용하고 그들에 관한 지식정보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있다면, 이러한 목적 달성에는 읽기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국어 화자를 만나 '삼촌불란지설(三寸不爛之舌)'을 놀려 얻는 것보다 서면 자료를 통해 획득하는 지식이 질적ㆍ양적으로 훨씬 월등하기 때문이다. 외국어 학습의 목적이 외국 관광객을 위한 길 안내나 해외 여행 시의 원어 쇼핑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각성해야 한다.

외국어의 경우, 언어능력의 다섯번째는 바로 번역능력이다. 우리말다운 표현으로 원의를 정확하게 옮기는 능력이 없다면 외국어문학 전공자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없다. 단순한 독해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 지식과 정보를 대다수 비전공자에게 제공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왜 중국어문학을 전공하는가, 그리고 중국어문학 전공자로서 나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우리학생들은 의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최근 '무분별'한 언어연수가 우리를 걱정스럽게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기 때문인가? 학교의 정규수업은 소홀히 하면서 많은 경비와 시간이 투자되는 현지 언어연수는 필수 코스가 되어버린 듯 하다. 모교에서의 수업은 학점 이수의 수단일 뿐이며,  현지의 원어수업은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대단한 공부를 하고 있는 듯 착각한다. 물론 언어연수가 절대로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정규수업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최대의 학습효과를 거둔 후에 언어연수를 간다면, 훨씬 적은 경비와 시간으로 훨씬 많은 학습효과를 올릴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의 중국 어학연수로 소요되는 경비는 이제 천문학적 수치에 이른다. 경제면에서도 조만간 우리를 추월할 중국에게 고작 초급과 중급 수준의 중국어를 익히기 위해 그렇게 엄청난 외화를 헌납해야 하는가 자성해 볼 일이다.

외국어 능력은 수단에 불과할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외국어 능력만으로는 결코 이 사회에서 탁월한 인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세모꼴 디자인의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세계 mp3 시장을 석권함으로써, 보잘것 없었던 국내 중소기업이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외국어 능력 덕분이 아니었다. 바로 네모꼴에서 세모꼴의 발상 전환, 이같은 디자인을 구상해 낼 수 있었던 사고력과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우리학생들은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릇은 거기에 담을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본래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듯이, 언어능력은 그 언어로 표현될 소양과 지식, 사상의식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단순한 어법 지식과 얄팍한 말하기 능력에만 중점을 둔 학원식 학습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설사 뛰어난 외국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풍부한 소양과 지식, 그리고 창의적인 사고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앵무새에 불과하다. 그런 앵무새는 평생 남의 밑에서 머슴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학생들은 그릇만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을 맛있는 음식 장만에 더욱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