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기자명 이은성 기자 (stylepear@skku.edu)

누군가 어떤 대상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진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때, 그 대상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하는 것은 일종의 유희다. 자칫하면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기 일쑤인 책의 경우에는 어떨까. 독일의 유명 판타지 작가인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인간이 ‘책’과 관련해 해낼 수 있는 모든 상상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책이라는 개체에 대한 모든 상상이 펼쳐지게 되는 이 책의 무대는 조금이라도 책을 접하고 관심을 가졌던 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의 특징은, ‘책과 문학이 생활의 전반에 기본적 요소가 되는’ 꿈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서적의 냄새가 하늘을 찌르는 부흐하임에서는 모든 생활이 문학에 밀접해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좋은 책이라면 수집을 위해 가진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도시의 곳곳에서는 시 낭독회가 열린다. 주인공의 고향인 린트부름 요새도 다르지 않아서, 이곳에서 태어난 공룡이라면 누구나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대부(代父)를 두어 문학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텐메츠는 대부의 유언에서 알게 된 한 원고의 주인을 찾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므로, 이러한 소설 속 설정이야말로 책에 대한 모험에 적합한 셈이다.

모든 모험이 시작되는 곳인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은 그야말로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도시다. 싸구려 통속소설부터 그 가치만으로 도시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가치 있다고 인정되는 '황금 목록'에 올라있는 책까지, 부흐하임은 말 그대로 책으로 가득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흐하임의 지하에는 지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많은 고서와 명저들이 그득하게 쌓여있다. 미로로 이뤄져 있는 부흐하임의 지하는 이 소설에서의 최고의 보물인 책을 찾기 위한 어드벤처의 무대가 된다.

그 누구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설명에도 흥분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원고의 주인을 찾기 위한 미텐메츠의 여정은 그보다 더 짜릿한 것이다. 엄청난 가치의 고서적들을 물려받고 그 재력과 영향력을 통해 부흐하임의 출판·문학을 움직이는 스마이크는 주인공이 갖고 있는 원고를 보고 주인공을 지하 세계로 추방시킨다. 여기에서 미로처럼 연결돼 있는 지하세계에서 미텐메츠는 수많은 괴물과 서로를 공격하는 책사냥꾼들에 맞서 살기 위한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묘사해내는 작가의 필치는 마치 눈에 다가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책에 관한 괴물이 있고, 위기가 있고, 결말이 있는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내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

상상,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을 지켜보면서도 계속 주시하게 되는 것은 그를 지하세계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스마이크의 존재다. 스마이크는 무엇인가? 현실로 이야기하자면 거대한 자본의 권력이다. 문학을 상업화시키는 돈의 질서다. 아마도 아름다운 어휘와, 부드러운 문장으로 이뤄진 완벽한 원고를 사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가장 비예술적인 사고를 갖고 문학계를 지배했던 거대권력의 모습 때문이리라.

소설의 전반에 계속 흘러나오는 책 자체에 대한 예찬과, 그 소재에 있어 다른 제재를 완전히 배제하고 단순히 책에만 집중하는 작가의 선택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문제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책 자체에만 집중하라 -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부흐링 족에게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스스로에게 존경할 만한 작가의 이름을 붙이고, 그 작가에 대해 순수한 탐구를 하며 책을 읽음으로서 자신의 자양분을 삼는 지하세계의 부흐링 족의 모습은 소설이 원하고 있는 진정한 독자의 자세다. 소설의 후반에, 스마이크가 동원한 책사냥꾼들과 싸워 ‘완벽한 원고’를, 아름다운 문학을 지어낸 작가와 그 문하생인 주인공을 지켜내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문학의 참 의미를 되새길 것을, 책에 대한 순수한 매력을 느껴볼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책의 향기와 책으로 만들어진 많은 피조물에 감탄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종용하는 것이다.

책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지상으로 나오는데 성공한다. 스마이크의 재력의 원천이었던 지하실의 책들은 모두 불타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정의는 승리했다. 최소한 책에서는 말이다. 우리 사회로 돌아가 봤을 때,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를 보자. 출판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장되고 있는 고귀한 문학이 있지는 않은가? 작가는 책 속의 과장된 세계가,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재의 상황과 닮아 있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