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정 현 배 (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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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저서 「노동운동과 노동자문학」
「국내외 평화교육사례의 통일교육에의 적용방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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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 여성의 날에 즈음하여

<3. 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감금된 채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던 미국 면공업 여성노동자 140 여명이 화재로 타죽은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분노해 일어난 대대적인 파업을 기념해 제정됐다. 94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도, 3월 8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와 <전국여성노조>가, 3월 10일 대학로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기념식과 문화제를 개최했다. 여기에서 제기된 구호들은 여성의 비정규직화 철폐, 호주제 폐지, 성매매특별법 제정, 보육의 공공성 확보이다. 바로 이런 구호에서 한국 여성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 여성의 현실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여성의 고용 불안정이고, 전체 여성노동자 중 73%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국가가 지원하는 보육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어, 국·공립 보육시설은 10%에 불과하고, 많은 사설 보육기관이나 보육교사들의 질적 열악성은 탁아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호주제 역시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장치가 되고 있고, 이 제도 아래 많은 가족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 현행의 친양자제도로 인해 같은 형제나 자매가 다른 성씨를 사용해야 하는 당혹스런 현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다양한 학술적인 연구들이 호주제가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기보다 일제에 의한 ‘전통의 발명(Invention of Tradition)’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호주제의 폐지는 여성계의 당면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하여 성 산업을 척결하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제이다. 군산의 한 단란주점에서 일어난 화재가 20분도 되지 않아 15명 여성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도처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감금-강제매춘의 유착고리를 드러낸 대목이다. 특히 문제시할 점은 최근에 들어와 자본주의적 성 산업의 기하급수적인 확산이다. 가임 여성인구의 20% 정도가 실질적으로 매 매춘에 종사하고 있으리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성해방과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하여

<성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난 2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성희롱이 문제시되고 있고, 이와 병행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확실히 성차별에 관한 한 지난 10년 사이에 많은 개선조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로써는 충분치 않다. 최근 OECD가 70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지위척도에 관한 조사에서 한국은 67위를 차지했다. 상업화의 급류에 편승한 ‘페미니즘 담론’의 범람이 여성현실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페미니즘 담론과 현실 사이에는 아직도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성해방과 함께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이며, 민주주의 없는 성해방 역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3.8 여성의 날을 맞이해 다시 성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