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양재혁
(유학 . 동양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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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철학회
저서 '동양철학 서양철학과 어떻게 다른가'. '장자와 모태동의 변증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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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부터 26일까지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지금까지 나의 인식의 한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대표로 알려졌던 소련이 1990년 해체되고 러시아라는 국가로 전화한 기간은 불과 10여 년이 경과했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소련 변방이 해체될 때까지 70여 년 간 우리는 그것을 공산주의 독재체제로 바람직하지 못한 국가이기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알았다. 이제 러시아는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그 과정에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는 마피아가 실권을 좌우하는 혼돈의 체제라는 다분히 감정적 비하의 정보가 다량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동안 엄청나게 변화했다. 짧은 시간 변화의 속도가 컸던 만큼 그에 대한 정보전달도 오류가 너무 많았다. ‘일주일간 외국 여행을 한 사람이 할말이 제일 많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저 적대국으로만 알았던 소련의 해체에 우리 저널리스트나 시대편향적 지식인들의 눈에는 부분적 단점만을 모두인 것으로 판단하고 흥분했었다. 그러나 소련이나 러시아의 실체는 거대한 사회 정치·경제 체제의 저력과 그에 따른 장점이 있다.
브라지보스톡 호텔에서 1박하고 다음날 국내기 편으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이르추크(Irkutsk), 중앙 아시아의 중심-인구 70만의 러시아 비행기 제작 공업도시-이며, 바이칼 청정호수로 유명한 요충지를 답사했다. 우리는 다음날 이곳에서 시베리아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56시간동안 3,200km 구간을,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에서 보던 꿈의 설경을 직접 체험했다. 드디어 목적지인 예카쩨른부르크(Ekaterinburg), 즉 아시아와 유럽의 접경 도시에 도착했다. 나는 이야기로만 알던 인구 120만의 이 거대한 대륙 깊숙이 묻혀 있는 도시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하면서 마음이 동요됐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독일군에 밀려 유럽지역의 생산공장을 모두 우랄산맥 너머의 이 도시로 옮기고, 이 곳에서 생산한 탱크와 대포로 히틀러 군대를 함부르크까지 밀어내었다는 그 현장의 상황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우랄 주립대학을 방문해, 총장실에서 우리 대학과의 학술교류(교수, 학생교환) 협의를 계획대로 실현했다. 우랄 대학은 러시아 우주항공 과학의 본산지이며, 그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첨단 과학연구의 산실이다. 겉에서 보이는 건물은 거칠고 충충한 낡은 모습이지만, 그 대학의 내부 활력에서 우리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느꼈던 삭막함은 모든 건물의 내부에서 정반대로 나타난다. 훌륭한 난방시설 그리고 차분한 질서와 내부시설의 세련됨은 어디에 비해도 손색이 없었다. 독일이나 미국의 대학 연구소와 하등의 격차를 볼 수 없었으며, 소수정예중심교육 체계와 생동감이 넘치는 학생들의 활동 등 모든 것은 한질 눈 속 혹한의 외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실상들이었다. 세계제일의 원유생산국가, 다져진 사회기초 체계에 날로 안정되어 가는 정치질서는 대국의 잠재력을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 발전시키는데 하등의 의심이 있을 수 없었다.
지난 세월 우리는 너무도 편협한 감정적 반공이념에 매몰되어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겉모습의 약점만을 골라 비판 배척한 결과, 오늘 중국과의 교역에 한계를 절감하며 때늦게 중국학의 붐을 만들고 있듯이, 아마도 몇 년 안에 우리는 러시아에 대한 그동안의 색깔론적 감상의 평가를 후회하면서 뒤늦게 새로운 러시아 연구의 열풍이 온 대학에서 진행될 것이란 점을 나는 확신한다. 멀리서 바라본 선입관을 버리고 거칠게 보이지만 그 건물의 거대한 현관문을 열고 과감하게 내부로 들어가라, 그래서 엄청난 내부의 미로에서 보물들을 하나하나 발견할 때, 새로운 경탄이 있을 것이다. 우리 학생들만은 지금도 큰소리 치고 있는 그 속물 근성의 색깔장난의 긴 꿈에서 깨어나 그 강한 색깔의 숨겨진 진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한 차원 높은 인식은 자신과 국가의 새로운 번영을 능동적으로 창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