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 읽기』, 윤영남

기자명 손동한 기자 (sohndh@skku.edu)

언론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어느 유명화가의 미술 전시회. 그러나 그곳에 전시된 여러 작품을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진 않는가? 그럴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작품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써놓은 책이나 설명들을 읽는다. 읽기에도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된 설명을 읽고 나면 작품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절망감만 밀려온다.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당신에게 미술은 더 이상 책으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읽기』는 기존의 미술 관련 책들이 흔히 다루는 미술 주제나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지면을 구성하지 않는다. 대신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교양으로서 바라보는 미술에 대한 색다른 시각들이 담겨있다. 즉, 미술을 이해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의견이 전문가의 것이 아니라 다소 미심쩍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보다 쉽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다.

불손하게 딴지걸기
미술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이 책은 불손할 수밖에 없다. 미술비전공자인 저자가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오히려 전문가의 의견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전공자이기에 접근할 수 있는 금기영역에도 용감하게 발을 들여 놓는다.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접근 금지의 영역으로 여겨진 피카소에 대한 평가도 그 중 하나다. 저자는 작품이라면 그 자체로만 평가돼야 하는데 피카소는 작품보단 명성으로 평가된다고 진단한다. 미술 평론가인 존 버거는 피카소를 ‘20세기 추상미술의 확립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가 추상미술을 확립시킴으로써 그의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워졌으며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만족감을 주었는지에 되묻고 있다. 그리고 피카소가 각종 로비 등 사교계 활동이 없었더라면 예술가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이런 비평을 통해 그 많은 비난과 두려움을 넘어 비전문가가 느끼는 미술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밝힌다.
 

건방지게 제시하기
또한 이 책은 현대 미술가들이 대중이 아닌 평론가들의 평가 기준에 맞춰 작품을 제작하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린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어려운 미학용어를 써가며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미술 전문가를 불신하다. 저자는 이제 대중을 미술의 소외의 대상에서 대화의 대상으로 여겨 달라고 제시한다.

주류 평론가들에게 작품에 아무런 알맹이도 없다며 혹독한 비판만 받던 스코틀랜드의 잭 베뜨리아노는 오히려 순수하게 대중적인 인기를 통해 그의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전문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잭에게서 대중들은 관객과 대화하려는 화가의 노력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로댕의 연인으로 알려진 까미유 끌로델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평론가들은 그녀가 로댕에 이끌려 독립적인 미술관점을 확립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저자는 이를 로댕의 연인이라는 관점에서 그녀의 작품을 판단했다고 여기며 조각가 까미유 끄로델로서 바라봐 주길 바란다.

미술은 난해한 미학용어나 인문학적 지식으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작품을 보며 작가와 생각을 공유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더 이상 미술관에서 소수의 전문가들이 쓴 책에 나타난 감상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제는 차를 마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에 나타난 아름다움을 느끼며 유쾌한 경험을 가질 때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