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연 편집장 (idealist13@skku.edu)

초등학교 때였다. 교실 청소를 할 때마다 남학생들은 책걸상을 옮겼고, 여학생들은 그 사이 걸레를 빨아와 교실 뒤쪽으로 밀어놓은 책상 위를 닦았다. ‘책상은 왜 꼭 남자아이들이 옮겨야 하는 거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은 남자아이들이 힘이 세고, 여자아이들이 꼼꼼하기 때문에 청소 담당을 그렇게 나누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초등학교에서의 분담이란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학생들이 각자 어떤 일을 담당하게 될 때에는 그 개인의 특성보다는 흔히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특성이 반영됐다. 이러한 결정에 늘 유감이 많았다.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성 역할에 구분을 짓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성 역할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았다. 그녀가 성 역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성 역할이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태평양에 있는 원시 종족의 사회를 조사한 결과 원시사회로 갈수록 남녀 간의 기질이나 특성, 기능에는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원시 종족들은 그 종족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공격적 성격이나 협동적 성격이 남녀에게 공동으로 형성돼 있으며 역할과 생활 분담도 남녀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로써 그녀는 성 역할이 유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영향으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은 성 역할이 후천적으로 학습된다는 주장에 대해 크게 놀랄 사람이 없겠지만, 그녀가 연구를 했던 20세기 초만 해도 이러한 연구 결과는 상당히 혁신적인 것이었다.

학자의 이론과 현실은 흐름을 함께 하기 힘든 것일까. 마가렛 미드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의 폭은 여전히 한정돼 있는 것 같다. 물론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못된 인식으로 여성의 역할을 한정지었던 과거가 기준이 돼, 현재의 여성의 지위를 두고 감히 ‘나아졌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한 여성을 봤을 때, 그 여성이 여성성을 감추고 남성화돼 가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언젠가 라디오를 듣고 있을 때였다. ‘나는 여성이기에 앞서 기자’라고 말한 유명 여기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성은 왜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여성성’이란 단어에서 모호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나도 여성이기 때문일까. 우연히 들은 라디오 방송 내용에 대해 한참을 곱씹었다 .

지난 25일, 총리 후보로 여성부와 환경부의 장관을 지낸 한명숙 씨가 지명됐다. 한명숙 지명자가 국회의 인준을 통과할 경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갖게 될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이 달갑지만은 않다. 성 역할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기는 제약으로부터 여성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