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발기자, 이상호를 만나다

기자명 박소영 기자 (zziccu@skku.edu)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성 X파일을 기억하는가. 국민들은 한 편의 녹취록으로 정치와 자본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이 보도의 중심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녹취록을 입수한 이상호 기자가 있었다. △하남환경박람회 비리 보도 △옷 로비 보도 △연예인 PR비 보도 △노예계약 보도 등 굵직굵직한 고발을 하며 사회의 고름을 터트리는 역할을 해 온 이상호 기자. 한편 그는 기업으로부터 명품 핸드백을 받은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기자는 날카로운 사회구조 속의 부드러운 부분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윤재홍 기자
프로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동대학 국제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MBC 문화방송 보도국 입사
사회부, 외교통상부, 카메라 출동부 기자
시사매거진 2580 기자
신광균의 사실은 기자
현 MBC 보도국 국제부 기자

■ 대학생활은 어떠했는가
대학시절 나는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하는 학생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87년 6월 항쟁과 6.29선언도 함께 겪었다. 그러면서 학생운동이 침체기를 맞았다. ‘오랫동안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그 길이 언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영자신문사에 들어가 편집장까지 하게 됐다.

■ 기자를 지망한 동기는
대학과 과에 의해서 나의 나머지 삶이 결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삶의 목적에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다. 막연히 사회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비판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다른 대안들을 지우다 보니 남은 것이 기자였다. 일관적으로 쭉 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방송기자를 선택한 것은 방송의 영향력이 전면적이기 때문이었다. 불특정다수에게 뉴스를 던져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데 끌렸다. 또한 신문보다는 방송이 미래지향적인 매체라고 생각했다.

■ 수습기자 시절 에피소드가 있다면
모든 수습기자가 그러하듯이 6개월 동안 경찰서 출입을 했다. 경찰서는 취재하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리적인 단면이 다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경찰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곳인 동시에 공권력의 말단에서 대민접촉이 일어나는 곳이다. 수습기자를 경찰서로 보내는 것은 공권력의 말단을 감시하면서 취재하는 노하우를 기르기 위함인 것이다.
처음엔 범죄자만큼 우락부락한 형사들에게 말붙이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살인사건들을 대하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번은 선배가 살인사건에서 나온 시체를 만져보라고 해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시체를 만져봤다고 했더니 이번엔 찔린 곳이 몇 군데인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나중엔 상처의 깊이를 확인해보라고 하더라. 정말 무서웠다.(웃음)

■ 특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무도 감히 쓰지 못했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아무도 더 이상 읽지 않을 소재가특종의 세 가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조건은 사회적 성역과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 조건은 상식의 벽에 갇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이미 진부해졌다고 해서 문제제기를 꺼리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새롭게 조합해 특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언론에만 특종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에도, 비즈니스에도 특종이 존재한다. 가령 미셸 푸코가 일상의 ‘성’을 권력의 음모와 역사 속에서 발견한 것도 특종이라고 할 수 있다.

■ 가장 보람이 있었던 보도는 무엇이었는가
지난 2002년에 국회의사당 밑으로 지나가도록 설계된 지하철 9호선 노선을 국회에서 압박해 크게 굴절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 사안이야말로 앞에서 말한 특종의 세 가지 조건에 들어맞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계속 취재해 3월 시사매거진 2580에 보도한 후 노선을 원상복구하라는 여론이 생겼다. 이후에 서울 시장 선거에서 노선을 원상복구하겠다는 공약이 세워졌고 11월에는 결국 지하철 9호선의 국회의사당 통과가 확정됐다. 매우 보람있었던 경험이었다.
이외에도 연예계 PR비 보도, 노예계약 보도 때 소송이 10여건이 들어오는 등 2년동안 고생을 했지만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보람있는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고발기자여서 행복하다.

■ 고발 보도를 위한 취재라면 취재원 접촉도 쉽지 않을텐데
좋은 기자란 취재원에게 진실을 말하게끔 만드는 사람이다. 진실을 말하게 하기 위해선 취재원에게 10분안에 나에 대한 모든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취재원에게 ‘나는 당신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당신이 말하는 진실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취재원 설득은 사랑을 구애하는 것과 똑같다고 본다. 또한 취재원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 삼성 X파일 사건을 제보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삼성 X파일 사건을 제보 받을 때 어떤 운명적인 것을 느꼈다. 제보된 서류를 들고 회사로 오면서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두 가지 복합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이 사건이 내가 기자로서 꼭 써보고 싶은 기사였기에 느껴지는 행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사건으로 나의 중요한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느낌을 제보 받았을 때 한번, 그리고 1여년간의 고생 끝에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했을 때에도 또 한 번 느꼈다.

■ 기자에겐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현재 한국기자 중에는 이라크 종군기자가 한 명도 없다. 국방부와 외교부에서 허락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하겠다고 나서는 기자도 없다. 투사적 기자가 더 필요하다. 
겉으로는 안온해 보이는 우리 사회를 저공비행하다보면 생존권 문제 등 사회적인 ‘이라크’가 곳곳에 있다. 수많은 전장에 있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의식을 잃지 않으려 하는 기자가 필요하다. 오늘날 기자는 점차 보수화, 권력화 되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전문직이라는 의식을 가지면 안되며 시민적 눈높이에서 시민과 함께 체감해야 한다. 기자는 경마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있는 그대로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며 기자에겐 무엇을 볼 것인지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요즘 대학생의 사회문제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장은 문제의식을 원하지 않으며 시장에서의 소비자는 문제제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대학생은 시민이 아니라 단지 소비자일 뿐이다. 하지만 대학생은 분명 시민이며 시민으로서의 자기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과거 80년대에는 비판의식을 가지고 투쟁한 사람들이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낙오자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자가 낙오자가 될 것이다. 비판의식이 없는 자는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단순한 소비자이자 타켓팅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 고발기자로서 우리 사회의 이런 부분은 꼭 바뀌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합리성과 이성이 마비돼 있기에 무엇보다 이성의 회복이 시급하다. 미국이 아무런 이유없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려도 그런 나라를 아름답다고 하는 나라가 현재의 한국이다. 최소한의 이성이 회복돼야 양심과 윤리가 되돌아온다.

■ 한국의 언론환경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2000년부터 5년 사이의 언론환경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온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많이 변했다. 5년간 인터넷이란 신매체가 탄생하고, 활성화됐다. 2000년 말에 오마이뉴스가 탄생한 것을 보자. 그 당시만 해도 아무도 인터넷이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획기적인 변화였고 언론 환경의 변화는 전사회적인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인터넷 매체들은 언론의 합리화,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 기득권 기자들은 보다 더 시민과 교류하고 더 큰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 시민기자의 발흥은 즐거운 도전이다.

■ 현재 운영하는 홈페이지가 있는데
지금의 홈페이지는(www.leesangho.com) 2002년 12월에 만든 것이다. 2000년 카메라 출동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부서 특성상 제보를 많이 받았다. 그 당시 인터넷이 많이 활성화 되던 시기라 기자와 시민의 쌍방향의 취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탐사보도와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인터넷 대안매체, 고발 뉴스 포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다가 2002년에 다시 만들었다. 이 홈페이지에서 받는 국내 사건들과 관련된 제보는 후배기자를 연결시켜주거나 하는 방법으로 취재를 하려고 한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인가
조선일보의 물적 토대와 역사적 비윤리성에 대해 오랫동안 취재해 왔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의문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고 싶다. 또한 새로운 뉴스전달 포맷을 만들고 싶다. 현재 한미 동맹과 언론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중인데 논문을 통해서도 고발을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