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인(의학)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캠퍼스의 봄은 십 수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밝고 생기 넘치는 젊음과 꽃 내음에 나의 아침은 싱그럽다. 한 면이 모두 유리창인 연구실의 블라인드를 올리면 바로 앞에 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자연과학 캠퍼스에 사는 또 다른 작은 축복이다. 습관처럼 인스턴트커피 알갱이를 대강 큰 머그잔에 털어 넣고 더운 물을 받아 흔들며 컴퓨터를 켠다. 시작 창에 뜨는 Pub-Med에 몇 개의 key word를 쳐놓고 밤새 새로 올라온 논문들을 검색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언제나 바빴다. 내게 동선의 최소화와 시간의 절약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마 최대의 적이 아닐까 싶다. 세상의 모든 일회용품과 3분 요리를 너무도 사랑하며 작은 토막 시간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과대과장 광고에도 몸을 던져 각종 조잡한 전자제품을 섭렵하는 무식함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 오해를 사는 나의 오래된 습관인, 아무것도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즐기는 건 괜한 멋을 부리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가장 경제적인 길을 택한 것뿐이다.

실험도 마찬가지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길고 복잡한 실험 방법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탈이 생길 여지도 많아질 것이 자명한 일이고, 여러 번의 반복이 요구되는 실험들인 이상 최적의 조건을 찾아 가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시간을 분단위로 세분화하길 좋아한다.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실험을 같이 수행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울리는 timer 소리에 간혹 진땀을 빼기도하지만 그 치열함 또한 때로 지겹기도 한 실험실 생활의 묘미다.

뇌 효소의 활성연구에서 지금은 신경세포의 생존과 사멸을 조절하는 신호전달 쪽으로 연구 분야를 옮겨 와, 문 연지 1년 밖에 안 되는 우리 실험실과 함께 모든 게 걸음마 단계다. 나보다 더 게으르지만(?) 덩치는 큰 세 명의 남학생들이 요즘은 밤낮으로 나의 구박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벤치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우리 손으로 루게릭병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 연구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신경 세포가 죽고 사는 운명을 결정하는 조절 기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우리는 기꺼이 너의 젊음을, 나의 열정을 한 곳에 모아 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