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스케치]

기자명 조원국 기자 (ok224@skku.edu)

미술관에 의자가 놓여 있다. 관람객이 잠시 쉬어가는 휴식공간이 아니라 전시관 내부에서다. 의자 자체가 전시품이기 때문이다. 의자 따위가 어떻게 미술품이 될 수 있느냐고 코웃음치는 사람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곳,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위대한 의자, 20세기의 디자인:100 Years, 100 Chairs’ 전시회 현장이다.

전시관에 발을 들여 놓으면 세계의 거장 디자이너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의자 1백여 개가 1900년부터 2000년까지 시대 순으로 서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서서히 꽤 특이하다 싶은 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1940년대에 들어서면 혁신적인 디자인의 의자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격적으로 단순한 라인을 지닌 의자는 모더니즘의 도래를 온몸으로 외치는 듯하고 아찔할 만큼 매혹적이고 날렵한 S자 곡선의 의자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1960년대부터는 아예 좌석과 등받이, 그리고 다리로 정형화된 의자의 모습을 탈피한다. 2차원인 평면의 천을 꼬아서 입체적인 리본으로 만든 의자와 여체를 본 따 만든 빨간색의 육감적인 의자는 필시 앉는 게 아니라 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리라. 굵은 줄 하나로 수십 개의 매듭을 만들어 의자의 형태를 이룬 작품도 일반인의 상식을 훌쩍 뛰어 넘는다.

계속해서 1980년대에 이르면 권위를 상징하는 팔걸이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어 권위주의를 조롱하는 의자도 있고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트를 거의 그대로 갖다 놔 자본주의사회 소비행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자도 볼 수 있다.
단순히 아름답고 특이한 수준을 뛰어넘어 여러 가지 철학적 사유의 흔적이 엿보이는 의자들. 더불어 앉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고 정신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의자는 새삼 디자인의 힘을 느끼게 한다. 육체적인 편안함은 단순히 인체공학적인 설계로 가능할지 모르나 사용자의 정서를 고려해 정신적 위안을 주는 일은 디자인만이 가능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좌식문화에 익숙한 동양인들과는 달리 서양인들에게 의자는 인테리어의 시작이자 생활의 기본이다. 그래서 1백년에 걸친 의자 디자인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서양의 사상과 사회상의 변화를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다.

이 전시회는 스위스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의 소장품 중 1백여 점을 골라 이탈리아, 미국 등을 들리고 서울에 온 순회전이다. 줄기차게 흘러가고 있는 서구 디자인의 역사가 지금 서울에 잠깐 앉아서 쉬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어서 가서 만나보라. 한번 흘러가버린 시간은 절대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처럼, 이 순회전도 이 땅을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기간:~4월 30일
△장소:서울시립미술관
△가격:성인 6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