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지연 편집장 (idealist13@skku.edu)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는 올빼미를 유독 아꼈다고 한다. 아폴론의 태양이 대지 저편으로 넘어갈 때면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아올랐다. 미네르바는 어떤 이유로 올빼미를 아꼈던 것일까. 헤겔은 그의 저서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이 말이 이성적인 철학이나 진리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선행하기보다는 일이 다 끝날 무렵에야 알게 된다는 의미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황혼녘에야 날개를 펴는 것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왜 하필이면 올빼미였을까. 미네르바가 이른 아침을 깨우는 새를 좋아했다면 철학이 시대를 선행할 수 있었을까.

예측하지 못했거나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경험에 대해 생각하면서 머리 속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만약에 내가 …했다면’ 따위의 시나리오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하다. 후회의 감정이란 인류 공통의 것이니 말이다.

류시화의 잠언시집 ‘지금 알고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이러한 후회의 감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황혼녘에야 날개짓을 하고,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고 해서 실망감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다. 미네르바가 올빼미를 아꼈던 것은 뜨거운 낮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잠히 사색에 잠길 수 있는 황혼녘에 날개짓을 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는 낮 시간의 흥분과 혼돈 속보다는 보다 잠잠한 상황 속에서 사색과 반성의 시간을 갖길 바랬던 것이다. 그저 늦은 시간에 날개짓을 하는 올빼미를 원망할 것만이 아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후회와 미련이 남을 수 있지만, 지금 무엇인가 알게 된 것은 거저 얻어진 결과가 아니다. 알지 못했던 그때의 실패 때문에 지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무엇을 후회하며 살았는가는 대게 비슷한 카테고리에 묶이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서 듣는 선배들의 대학시절 이야기나 후배가 토로하는 지금의 고민들은 부분부분 닮아있다. 선배에게는 지금의 내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고 싶고, 후배에게는 그럴듯한 해안을 내놓고 싶은 것이 욕심이지마는 사실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답답할 때는 선배를 찾고,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고 싶은 것은 선배로부터 황혼녘에 날개를 편 올빼미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기 때문이고, 그때는 몰랐던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후배에게 들려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조금씩 나누면 올빼미가 조금 늦게 날아오르더라도 어디로 날아오를 것인가에 대해 예측은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