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물목 - 이지순(프랑스)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지순(프랑스) 교수
전공:프랑스소설, 여성문학
E-mail:jislee@skku.edu
우리 대학 명예교수이며 학술원 원로회원이신 범초 손우성 박사께서 지난 19일 102세의 일기로 별세하셨다. 손우성 선생님은 변변한 불어사전 하나 없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프랑스말과 문학을 소개하신 선구자이시고, 학문과 인품 모든 면에서 많은 후학들의 존경을 받아온 불문학계의 참스승이시다.

내가 손우성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선생님께서 80을  바라보고 계신 나이에 명예교수로서 강의하실 때다. 즉 선생님의 거의 끄트머리 제자인 나는 선생님에 대한 각별한 기억과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번역하기도 하셨던 선생님은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사상에 대하여 자주 설명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당신보다 한살이 적은 사르트르를 본인과 비교하시며 그의 사상을 치켜세우거나 때론 비판하면서 동시대 학자로서의 당당함을 보이셨다.

그때 난 겸허하고 수수하신 외향과 달리 학문에 있어서만은 세계 어느 지성인과도 견줘보겠다는 선생님의 자신감과 의지를 엿보며 적이 놀랐다. 그 기억은 이후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단순히 서양학문을 답습하려고만 하는 나를 힐책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 선생님 수업의 기억은 보들레르였다. 지금처럼 초여름의 신록이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어찌된 영문인지 강의실에는 나를 포함 겨우 둘만이 앉아 있던 적이 있었다. 휴강을 잠시 꿈꿨던 기대는 이미 무너졌지만 그래도 그날만은 대충 빨리 끝내주시겠지 생각하며 앉아있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항상 그렇듯이 너무나 많은 강의준비를 해오셨고 학생 수에 상관없이 정말 열정적으로 끝까지 강의를 하셨다. 마침내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결강하거나 휴강을 생각한 우리들이 부끄럽다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께 죄송함을 느꼈다. 그때 내가 배웠던 텍스트가 바로 보들레르의 시, ‘여행에의 초대’이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나는 누보로망과 구조주의에 관한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막 소개되기 시작했기에 학부에선 접해보지 못했던 프랑스의 누보로망 그리고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이론을 나는 젊은 교수님이 아닌 바로 노교수님으로부터 배우며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도전정신에 또다시 놀랐었다. 이후 90이 훨씬 넘은 연세에도 선생님은 “언어는 영혼이다”라는 자크 라캉의 정의를 추적하며 라캉을 연구하셨고, 의식이 없으시기 얼마 전까지 『타임』지를 읽으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뒤쳐지지 말아야 된다며 쉼 없이 사고하고 공부하셨다.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프랑스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특히 외국이 지금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던 시절, 학생들에게 일찍이 세계화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켜주시며 우리들의 눈을 국내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세계로 자꾸 돌려보라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외국의 장점을 배우라 하시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또한 잃지 말 것을 충고하셨다.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 그리고 현실에 대한 올바른 직시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신 선생님의 가르침이,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도 조금이라도 귀감이 되길 바라며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