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상만사]

기자명 조원국 기자 (ok224@skku.edu)

대학생 A군은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났다. 토요일이라 학교 수업은 없었지만 친구와 만나서 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기 탤런트가 드라마에 입고 나온 명품 브랜드의 셔츠와 청바지로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섰다.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건대 근처의 유흥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다가 친구를 만나 성대 맞은편의 대학로로 이동했다. 대학로의 수많은 옷가게 중 한 곳에서 모자를 사고 가방도 하나 사려 했으나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어 홍대 근처로 장소를 옮겼다. 홍대 근처에서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의 가방과 옷을 산 뒤 다시 이대 근처로 간 A군. 그 곳에서 그는 인터넷에서 보고 마음에 두고 있던 고가의 목걸이와 팔찌, 벨트를 어머니의 신용카드로 구매했다.

그리고 근처 유명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은 후 친구와 헤어진 A군은 연대에서 가까운 신촌에 가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비싸기로 유명한 술집에 가 진탕 술을 마셨다. 얼큰히 취해서 내친김에 클럽까지 가 신나게 춤을 추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에 타서 지갑을 열다가 A군은 자신이 오늘 하루 동안 쓴 돈이 50만원도 넘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오늘 자신이 다닌 곳은 모두 대학교 근처 지역이었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대학교 주변만 다니다가 이처럼 큰 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씀씀이가 특별히 크기 때문일까?

A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만 이런 것도 아닌데 뭐. 친구들도 다 이렇게 노는데, 자신도 이렇게 놀지 않으면 유행에서 뒤처지고 친구들이 만나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니 돈을 쓰지 않고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법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언젠가부터 친구를 만나서 ‘논다’는 건 자연스럽게 돈을 쓰는 행위를 내포하게 됐다. 돈을 쓰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배워 본적도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모이면 으레 가는 곳도 전부 지갑을 열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곳이었다. 문화적 혜택을 듬뿍 받고 자라, 문화를 제대로 향유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 세대가 모이는 곳은 어째서 모두 ‘비싼’ 곳들뿐일까? 이러한 소비문화가 형성된 곳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걸까, 아니면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 소비문화가 형성되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큰 돈을 거리낌 없이 쓰는 친구를 보고 ‘멋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정작 돈을 벌 줄은 모르면서.

문득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중학생을 상대로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꼼꼼하게 가계부를 작성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며 즐거워했다. A군은 그런 친구를 보고 네가 그러니까 아직까지 여자친구 하나 못 사귀는 것 아니냐며 놀리곤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약간의 죄책감 비슷한 기분이 들려는 찰나, A군은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어 신청해뒀던 운동화가 매장에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내일은 또 대학로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2006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A군의 씁쓸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