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부산고등학교 재학시절에, 나라꽃 무궁화의 연구로 일생을 보내고 계시는 성천 류달영 교수님께서 쓰신 좬사상계좭의 인생노트라는 제목의 수필을 읽고 감동을 받아 1959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학과에 입학을 하여 나무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고, 미국 Illinois대학교 유학시절 수목에 관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미국 워싱턴 농무성 국립수목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는 외교에 적극 활용하고자 정책적으로 전 세계 국가의 국화(國花)를 연구하고 있었다. 또한 무궁화 전담 연구원인 Egolf씨를 주축으로 하여 무궁화나무 단지와 여러 신품종을 개발한 상태이었고, 무궁화를 국화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무궁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아 성균관대학교 식물원에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 분포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무궁화 유전자원까지 3만5천여 평의 ‘무궁화 전시포’에 2백 품종 이상을 수집하였고, 무궁화를 가로수로 사용하기 위한 ‘무궁화 가로수 전시포’까지 만들게 되었다.

많은 무궁화 품종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육종한 겹꽃이 아닌 백단심이나 홍단심계의 홑꽃의 경우에만 “나라꽃 무궁화”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무궁화는 가장 무더운 7~10월에 1백일 정도 피는 나무로 여름날 꽃을 피우는 꽃 중에서 무궁화를 따라올 만한 꽃은 없으며, 여름철 ‘꽃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나라의 꽃이다. 그리고 무궁화(無窮花)란 이름은 ‘다함이 없는 꽃’, ‘피고 져도 또다시 피는 꽃’ 즉 ‘Non-stop Flowering’이라는 뜻으로 우리 배달민족의 인내와 끈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무궁화가 국화라는 사실이 법적으로 명문화가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과 함께 이어온 때는 대략 2천1백 년 전이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무궁화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나라꽃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1896년 독립문을 세울 당시 이미 애국가의 후렴에 있어 이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꽃’이 되었다.

이런 나라의 상징이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연구를 거의 20년 동안 수행하면서, 아침에 피어 밤에 시들어버리는 다른 품종과는 달리 밤에도 피어있는 “안동”, 개화시간이 36시간이면서 독립 운동가이자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인 김창숙 선생의 호를 따서 명명된 “심산”, 필자의 은사이신 류달영 교수님 아호를 따서 명명한 “성천”, 내 고향 울산을 상징하는 “처용” 등 20여 품종을 만들었다.

앞으로 이렇게 뜻이 많이 담겨있는 무궁화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되고, 또한 지속적인 국가시책으로 나라꽃 무궁화의 체계적인 관리를 행해야만 하고, 노란색 무궁화와 향기 나는 무궁화, 진딧물이 생기지 않는 나라꽃 무궁화를 개발하는데 정년퇴직은 했지만 본인은 아직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