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부문 우수작 최훈길(고분자99) 학우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오늘 꼭 고백하고 싶은데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자꾸만 망설여진다면, 지금 주머니 속 동전을 몇 개만 꺼내어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보세요. 그리고 말하는 거죠. “커피 한잔 어때요?” 이 광고 카피는 우리가 학교에서 우리의 주머니가 가벼울 때 우리 마음을 달래주고 도서관에서 머리 아프게 공부하다 시름을 식혀주는 커피 자판기에서 보이는 광고이다. 우리가 시험 때 친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이 바로 자판기 커피일 것이다. 그럼 지난 시험 동안 우린 얼마나 많은 종이컵을 만났을까?

교내 커피 자판기 업체인 휘닉스밴딩서비스는 지난 4월 율전 45대 명륜 35대의 커피자판기에서 20만개의 종이컵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우린 적어도 하루에 6000개의 종이컵과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손을 떠난 대다수 종이컵은 만날 수 없다. 왜냐면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일반쓰레기에 섞여서 버려지거나 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컵 재활용에 대해 학생들은 쓰레기통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성재(신소재00) 학생은 “종이컵을 넣으려고 해도 종이컵 수거대가 없다. 소각용 일반쓰레기통과 재활용 병·캔 쓰레기통밖에 없는데 종이컵을 어떻게 재활용하나”라고 반문한다. 교내 곳곳에 쓰레기통이 있지만, 종이컵을 따로 모으는 쓰레기통이 어디나 비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일어난다. 이 점에 대해 율전 환경시설관리팀 한재근 팀장은 “몇 년 전 자판기업체에 종이컵 수거대를 설치하게 했다. 그런데 커피를 다 마시고 종이컵을 뒤집어 놓아야 하는데, 학생들이 종이컵에 담배꽁초나 먹다 남은 국물을 넣다보니 자판기 주변이 지저분해졌다. 그 이후로 따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학생들의 협조가 부족한 것을 꼬집었다. 학교와 학생들의 이견 속에 결국, 종이컵 분리수거의 고역은 청소부 아저씨, 아주머니의 몫이다. 명륜의 쓰레기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남태석 씨는 “플라스틱, 병, 깡통, 종이, 박스는 재활용이 가능해. 종이컵은 종이와 함께 분류되지. 분리수거가 안 되면 구청해서 안 가져가니까 분리를 하는데, 하루 봉고차 10대 정도의 쓰레기에 다 섞어 나오는 컵을 5명 되는 인원이 일일이 다 어떻게 분류해? 컵 안에 담배나 지저분한 게 많아 분리해도 얼마 양이 안 돼”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심지어 율전 학생회관 쓰레기통 위엔 ‘청소하는 아주머니께서 힘들어 하십니다. 분리수거 꼭 부탁드려요.’라는 표어가 붙어있기까지 하다.

 왜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종이컵 재활용에 대해 무관심한 것일까? 종이컵을 모아도 얼마의 돈이 안 되기 때문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종이컵은 대부분 일회용 컵으로 알고 있지만, 깨끗하게 모으기만 한다면 충분히 재활용해 쓸 수 있는 종이이다. 종이컵의 재활용에 대해 대화제지 김정한 사원은 “종이컵 내부의 플라스틱 코팅만 벗겨내면 그 자체가 고급펄프다. 100톤 기준으로 75-85톤 정도가 재활용되며 마분지, 박스 등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종이컵 한 개당 10-20센티미터 정도의 종이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매달 20만개의 종이컵을 모아 재활용한다면 1년 동안 적어도 240 킬로미터 정도의 종이를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나 학생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학교는 매년 1학기에 두 번씩 ‘Clean&Safe day’를 열어 각종 화학약품, 노후 기자재 등을 수집하고 있다. 총학생회 경우 금년 대동제 기간 중 'Green day'를 정하고  패트병을 활용한 화분 만들기,현수막으로 가방 만들기 등의 캠페인을 벌인다. 또한 학내 유일한 환경 동아리 ‘푸른누리’는 매주 자체적으로 환경 세미나를 열고 있고 이번 대동제 기간엔 폐식용유로 천연비누 만들기 등의 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서로가 환경활동을 하지만, 서로의 환경활동에 대해서 인식차이가 크다. 명륜 관리팀 관계자는 “학생들 상대로 재활용 교육이 되겠나? 주변에 자취하는 학생들이 저녁에 쓰레기를 마구 갖다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며 학생들의 환경인식이 미비함을 꼬집었다. 총학생회의 경우 대동제에 환경 활동을 시민단체와 함께 기획했지만, 학교나 교내 동아리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은 없었다. 심지어 총학생회 핵심 간부 중 한 사람은 교내 환경 동아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푸른누리 구본우 회장은 “선배들이 했던 사업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그런 식의 재활용 활동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재활용 문제가 중요하다면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풀어나갈 수는 없을까. 서강대 환경 동아리 풍뎅이의 사례는 학생들이 학교와 함께 교내의 재활용 문제를 풀어나간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2003년 가을, 풍뎅이는 캠퍼스를 친환경적으로 만들자는 목표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동아리이다. 풍뎅이는 일상에서 환경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사업으로 ‘종이컵 재활용’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 서강대는 한 달에 10만개 정도의 종이컵이 소비되고 있었지만, 컵 수거대가 없어 종이컵은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었다. 정윤호 (경영, 98)학생은 “2000년에 종이컵 재활용 쓰레기통이 설치된 적이 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치밀하게 계획했다. 우선, 내부조사, 대외협력, 홍보 세 팀으로 나누어 다른 학교 사례 조사도 해보고 수거해 갈 수 있는 곳이 어떤지 조사하기도 했다.”고 그 때를 회상한다. 풍뎅이는 또한 학생들을 상대로 재활용 인식조사를 실시했고, 교내 환경미화원과도 종이컵 문제를 상의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학교 측과 재활용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려고 했다. 고은 (사회학, 03)학생은 “우리 스스로 저렴하게 종이컵 수거대를 직접 만들었어요. 학생들이 종이컵을 모아 갖다 주기도 하고 호응이 컸죠. 모은 종이컵은 외부 제지업체에서 재활용 휴지로 돌려받기로 했어요.”라고 그 사업에 대해 덧붙였다.

 요즘 사회 각계각층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환경’이라 하면 새만금, 천성산 등 외부의 거대한 담론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풍뎅이의 활동은 우리 자신이 생활하는 일상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환경운동의 첫걸음임을 제시한다. 혹시, 지금 이 순간도 자판기 커피와 함께 컴퓨터 앞에 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당신이 종이컵을 다시 만나게 해줄 첫 번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