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선이 기자 (ssunya@skku.edu)

퇴임식은 수습들에게 정말 잊고 싶은(?) 기억과도 같다. 바로 수습들의 재롱잔치인 장기자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이걸 왜 해야해, 난 기사쓰러 성대신문사에 들어왔다고!’를 맘속으로 열심히 외쳤다. 21살씩이나 되서 재롱을 떨어야 하다니,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기들과 함께 장기자랑 준비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퇴임식 장기자랑은 수습기자 전체가 함께 준비해야 하는 순서였다. 뭘 할지부터가 고민이었다. 춤을 추든가, 이상한 음식을 먹든가, 아무튼 뭔가를 빨리 결정해야만 했다. 다들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 당일 날 퇴임식이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도 우왕좌왕했다. 사실 춤이 조금 준비되긴 했었지만 너무 어렵다는 반응 때문에 노래를 바꾸고 춤을 변형시키기로 했다. 녹음이 되는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두운 노래방 안에서 조PD ‘친구여’ 가사를 변형시켜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박형진 편집장의 퇴임을 축하한다는 노래 가사는 급조한 것 치고는 정말 그럴싸했다.

한숨 돌리려던 찰나에 아뿔싸! 예약해 놓은 술집에 연락해 보니 테이프 재생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단다. 순간 완전 절망했지만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다시 새로운 걸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결국 집에서 오디오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렇게 간신히 춤 연습까지 마친 우리 동기들은 무사히 실전까지 통과했다. 췄던 춤 덕분에 필자는 킹콩이란 별명까지 얻었고 말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뭔가를 해보기는 오랜만이었다. 동기들과 장기자랑 준비를 하면서 서로 감정이 상한 부분도 있었고 서로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해냈다. 모두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 한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뿌듯했다.

퇴임식의 마지막 순서로 형진 선배를 목마 태우고 마로니에 공원까지 갔던 게 생각난다. 눈이 얼어 길도 미끄러웠고 가던 중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박형진’이라고 외치며 목마를 태운 행렬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행렬 속 사람들 모두 형진 선배를 진심으로 축하하던 마음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퇴임식을 통해 우리 동기들이 하나가 됐고 성대신문사 사람들도 모두 하나가 됐던 그 순간만이 중요했다. 퇴임식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할 줄이야. 어쩌면 퇴임식은 잊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