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제사의식 뛰어넘어 유교적 가치 계승한 석전대제

기자명 송민수 기자 (smssmsm@skku.edu)

이것이 석전대제다

석전은 문묘에서 선성(先聖)ㆍ선사(先師)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석전대제 △석채 △석전제 등으로도 불린다. 성균관에서는 해마다 두 차례에 문묘 일원에서 석전을 지내고 있는데 성균관 석전교육원 박만길 실장은 “석전이 양기와 음기가 일어나는 봄(음력 2월)과 가을(음력 8월)에 맞춰져 자연적 이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석전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공자 구택에 묘를 세웠다는 내용에서 시작한다. 그 이후 기원전 195년 한 고조 때 곡부에서 공자의 제사를 지낸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를 한 시초가 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 석전의 경우, 대부분의 학자들이 고구려 태학 설립 때 석전이 처음 열렸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후 삼국,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와서 1398년 성균관이 설립됐고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배움의 장소인 학교에서 석전이 봉행돼 온 것이다.

성균관에서 봉행되는 석전의 의식절차는 다소 복잡하긴 하나 크게 △축문 △재계의 △봉행 순으로 진행된다. 한문으로 된 홀기(笏記)를 집례가 읽으면서 시작되는 석전은 재관들이 전날 하는 재계(齋戒)가 중요한 절차 중 하나에 속한다. 재계는 부정을 피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재관들이 선서를 낭독하고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초헌관이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로 시작되는 봉행은 초헌관이 신위전(神位前)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大祝)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등을 거쳐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것을 보는 망료례(望燎禮)로 끝이 나게 된다.

또 석전대제는 제사의식 뿐 아니라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제례악이 연주되고 일무가 행해지는 등 일종의 종합 예술적 성격을 갖는다. 석전대제에 쓰이는 악기는 팔음(八音) 즉, 여덟 가지 재료로 만든 아악기가 주를 이루며 그밖에 여덟 명씩 여덟 열을 이뤄 춤을 추는 팔일무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석전대제의 아름다움이다.

오늘날의 석전대제

조선시대 당시 석전대제는 공자를 비롯해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성(先聖)ㆍ선사(先師)들을 모시는데 그 역사적 의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사회 이념인 유학 정신 계승 그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유학 정신이 시대이념이 아닌 상황에다 비현실적이라고까지 지적받는 오늘날, 아직까지 석전대제가 행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실장은 이 답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의예지를 가지고 선한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과거와 다르게 사람들이 그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본성, 즉 도덕적 실천 능력 없이는 사회는 더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석전대제는 의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시대를 막론한 도덕적 인성 추구를 촉구하는 것이다.”    

이번 가을에도 어김없이 성균관에서 공기 2557년 추기 석전대제가 열린다. 얼마 전 중국에서도 2008년 올림픽 기념동영상 촬영을 위해 다녀갔을 만큼 성균관에서 거행되는 석전대제는 원형보존이 잘 돼있다. 지금까지 유교문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학우라면 이번 기회에 석전대제행사에 참가해 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