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영준 대학부장 (g1014@skku.edu)

이번 우리 신문은 1398 성균관 특집호다. 성균관의 1398년 건립에서 연상한 이번 1398호 특집을 혹자는 숫자놀음이라고 판단할지 모르나 1398년 우리 학교의 건립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일 뿐이니 다그치기 보단 좋게 봐주셨음 한다.

필자가 1학년 파릇파릇한(?) 신입생이었을 무렵. 우리 학교는 건학 606주년을 맞았다. 2학기에 있는 정기적인 축제에 불과한 건기제에 친구들끼리 모여 술을 푸며 한을 풀어냈다. ‘재미없다’가 주된 주제였던 논쟁은 계속됐고 우연히 우리 학교가 왜 건학 606주년이냐 라는 물음이 나왔다. 논쟁은 거기서 끝났다. 아무도 몰랐으니까. 답이 없는 논쟁 아니, 관심이 없는 논쟁은 계속될 수 없다.

또다시 축제 그리고 우리의 6백년 역사. ‘니가 없어도 봄은 오더라’는 노래가사처럼 6백년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지만 600년의 이미지는 다시금 찾아오더라. ‘전통과 첨단의 조화’, ‘건학 6백년의 역사’. 우리들의 선배로 소개되는 퇴계이황과 율곡이이 선생을 보며 내가 그들 격으로 높아진 것인지, 그들이 내 격으로 낮아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기분은 좋다. 하지만 이 느낌 가족에게라도 자랑스럽게 말해본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왜?’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무런 대답도 못하는 상황은 누구든 반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부끄러운 얘기다. 학교 측은 그러한 홍보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반쪽자리 자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통해 반쪽짜리 자부심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 같은 범인의 자부심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남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파생되는 것이기에 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궁금했다. 6백년 역사라는,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 학교의 역사가 궁금했다. 반쪽짜리 자부심을 강요받는 내 상황이 궁금했다. 학교에서 남은 자부심의 반쪽마저 채워주면 좋으련만 별 관심 없는가보다. 학교가 ‘성균관’이라는 세 글자를 언제까지 반쪽짜리 자부심으로만 사용할지 또 궁금해진다.

사실 이번 성균관 특집은 몇 년 전부터 기자들이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특집에 대한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이번 특집을 기획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기사의 시작은 의문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니 제대로 된 기획의도라고도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투영하는 현실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성균인이여. 우리가 이황, 이이 선생을 ‘선배님’ 이라고 자신있게 부를 수 있을 날이 올까? 관심 없는 논쟁은 이어질 수 없듯 관심 없는 희망도 이뤄지지 못할 테니 우리 모두 관심이라도 가져보자. 6백년이라던 우리 학교 역사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