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물목] 백충용(철학) 강사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편의주의라는 것이 있다. 언제나 자신의 편리와 이익을 판단과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망신은 순간이요, 이익은 영원하다’든지,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등의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이 있다. 망신을 무시함은 사회적 규범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예외를 주장함은 사회적 규범이라는 원칙을 자기 임의대로 바꾸겠다는 태도이다. 사회적 규범을 어기면 어긴 것만 인정하면 되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끌어들여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는 꼴이 우습다.

돈이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하고 그것을 중시하는 세태이다 보니, 편의주의는 대개 경제적 이익의 추구와 본질적 관련이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편의주의적 돈벌이가 정당화되고, 사회적 규범은 무가치해지고 무력해진다.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거나 부정하려면 정당하고도 도덕적인 이유가 있어야 함에도, 편의주의에는 그것이 없다.

편의주의가 누구에게나 똑같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강자가 편의주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매우 크다. 엄청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권력까지 얻을 수 있다. 반면 약자의 편의주의는 기껏해야 약간의 경제적 이익이나 생활상의 편리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적 파급 효과 역시 매일반이다. 강자의 편의주의는 사회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약자는 기껏 자기 주변에 국한된다.

강자의 편의주의는 지극히 위험하다. 사회 전체를 부도덕에 빠뜨리며, 이를 통해 부당한 사회 질서를 재생산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약자는 부당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스스로 허물어져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강자를 모방함으로써, 편의주의로 인한 사회적 폐해의 책임 소재를 흐려버리는 우를 범한다. 강자의 편의주의를 비판할 자격마저 잃어버린다.

강자의 편의주의를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다. 강자가 편의주의를 통해 큰 이익을 봄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확대 재생산하는 현실, 그로 인해 사회 전체의 도덕성과 시스템이 동요되는 상황, 그 결과로 인한 빈부 격차의 확대 등에 도움을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회 질서를 건설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약자 스스로 차단하고 만다. 부당한 현실을 개혁하기는 커녕 그것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면서, 결국 자신의 권리와 이익마저 갉아 먹는다. 그것조차 모른 채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편의주의도 원칙일 수는 있다. 자신의 편익이 판단과 행동의 원리라면, 그것은 개인의 원칙이다. 일관된 신념과 행위의 체계가 철학이라면, 편의주의 역시 철학일 수 있다. 그러나 편의주의는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원칙도 아니요, 비판을 견디어낼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갖춘 철학은 더욱 아니다. 개똥철학의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 개인 경험을 무리하게 일반화시켜, 사회와 우리의 삶에 이기적으로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다.

편의주의를 버릴 수 없다면, 그래서 삶의 철학을 가질 수 없다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는 없다. 건강한 삶은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전혀 건강하지 않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전혀 멋스럽지 않은 삶의 노예로 전락할 뿐이다. 청춘에, 편의주의가 어울릴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