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과 홍대 앞에서 만난 그래피티의 세계

기자명 송민수 기자 (smssmsm@skku.edu)

그래피티의 메카 압구정 토끼굴

압구정역 1번 출구에서 나와 10분 쯤 걸어가면 그래피티의 메카로 불리는 토끼굴이 나온다.
한강 시민공원과 바로 연결돼있는 토끼굴은 입구에서부터 ‘눈으로만 보세요. 작품 훼손 시 양심에 의해 처벌 받습니다’라는 창의적인 문구가 그래피티로 표현돼 있다. 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양 옆에 펼쳐진 화려한 그림들이 보는 이의 눈을 매료시킨다. 노란 조명 속에 비춰져 더욱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그래피티는 약 100m 가량의 굴 안에 아티스트들의 생각을 표현한 타이포그래피와 다소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타이포그래피의 경우 얼핏 보면 모양이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이미지로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형이상학적인 그림 중에서는 특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남녀의 심장에 ‘NO’가 그려진 그래피티가 시선을 끄는데 사랑에 대한 아티스트의 절망적 심정이 복잡한 색채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사실 압구정 토끼굴은 법적으로 그래피티를 허용하지 않는 장소다. 그러다보니 해마다 몇 번씩 그래피티를 그리는 아티스트들과 이를 지우는 공무원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저기 보이는 덧칠 흔적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시 그곳에 표현이 이뤄짐을 증명한다.

거리 속 그래피티 홍대
압구정 토끼굴이 그래피티의 화려한 전시장이었다면 젊음의 거리로 유명한 홍대 주변은 곳곳에 그래피티가 자유롭게 녹아 있다.

홍대입구역을 나와 거리로 나서면 공사 중인 카페 벽면에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사가 진행 중인 벽면에 그래피티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새롭게 다가오나 도시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래피티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한다. 휴식공간과 화장실 벽면, 카페 등 그래피티가 가진 색감과 멋이 거리 속에서 다양하게 쏟아진다.

홍대 주변 골목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그래피티는 확실히 내용면에서도 토끼굴에 그려진 그래피티와 많이 다르다. 보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타이포그래피와 표현들이 존재했으며 사회 저항적인 메시지도 곧 잘 눈에 띄었다. 이는 홍대 주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해 도시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래피티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오늘날의 그래피티

낙서에서 출발한 그래피티는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인간이 만든 법과 질서에 의해 표현 욕구가 필요이상으로 제한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그래피티는 과거와 달리 개인의 창의력과 자기표현을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공공의 미적 코드에 감추지 않고 오히려 현장에 들어가 함께 공존하고 사회와 소통하려 한다. 압구정 토끼굴과 홍대 앞처럼 말이다.

즉흥적이면서 충동적이고 창의적인 그래피티를 우리 주변에서 보다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