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원국 기자 (ok224@skku.edu)

그래피티의 기원은 선사시대 동굴 벽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처럼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표현 욕구가 1960년대 말 미국 뉴욕의 빈민가 브롱크스에서 그래피티를 탄생시켰다.

반항적인 청소년과 흑인 등의 소수민족이 싼값에 구할 수 있는 라카로 건물 벽이나 길바닥에 내키는 대로 그림과 문자를 그린 것이 시작이었다. 70년대가 되자 그래피티는 건물 벽에서 벗어나 지하철 전동차나 테니스장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미술로서의 틀을 갖추게 됐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려댄 낙서 같은 그림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상상력이 넘치는 것들이었으며 갈라지거나 깨진 듯한 글자 문양, 복잡한 디자인, 선명한 입체효과 등 다양한 효과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그래피티가 마치 전염병같이 점점 퍼져나가자 80년대 들어 뉴욕시는 도시의 미관을 지키기 위해 라카의 판매를 금지하고 그래피티 지우기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래피티가 도시의 또다른 공해쯤으로 치부되며 규제를 받게 됐을 때 등장해 결정적으로 그래피티를 낙서에서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다.

바스키아는 어린 아이가 그린 것처럼 어설퍼 보이는 그림에 기호와 상징, 죽음과 같이 철학적인 주제를 담아 표현했으며 키스 해링은 검은 바탕에 그린 단순한 흰 그림으로 에이즈 퇴치나 인종 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과 같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이들의 작품이 가진 극명한 색채와 격렬한 에너지 그리고 특정한 기교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은 그래피티를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억압에 반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현대 미술계에 있어 극도의 즉흥성과 우발성에 기반한 그래피티는 일종의 구원으로까지 여겨졌다.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다양한 그래피티 전시회가 열리는 등 그래피티는 정식으로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았고 힙합이 보편화되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도 90년대 유행한 힙합 문화의 한 요소로 소개돼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서서히 마니아층을 넓혀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그래피티는 거리의 예술에서 그치지 않고 디자인으로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프라다나 돌체앤가바나와 같은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는 그래피티 디자인을 사용한 티셔츠를 판매 중이며 우리나라의 한 건설회사는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이처럼 낙서에서 예술로, 또 예술에서 산업 디자인으로 발전하고 있는 그래피티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