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외침이 드높다. 지난 9월 15일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 121명은 ‘인문학 선언’을 발표하여 인문학의 존립 근거가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뿐인가. 26일에는 전국 80여개 대학 인문대 학장이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출판계도 나섰다. 인문서적 출판인 50여명은 9월 25일 인문서적 시장의 회생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키로 했다. 신문과 텔레비전도 바쁘다. 다투어 특집란을 꾸미고 토론회를 마련하는 등 부산하다.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새삼스럽다고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 위기에 처하지 않은 적이 있느냐 반문이다. 그 위기가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게 아니라 장기적인 것임을 지적하는 말이라 하겠다.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무차별적인 시장 논리가 확산되고, 경쟁 논리와 상업주의 추세가 온 사회와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옳은 말이다. 올해 기획예산처가 책정한 연구개발 지원 예산은 8조 9000억 원에 이르지만 인문·사회계 몫은 1205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1.3% 미만이다. 이중에는 시장 탄력성이 높은 사회과학 지분도 포함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를 제외한 순수 인문학 지원분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해온 BK21 사업에서도 인문학은 의붓자식 꼴이다.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금은 과학기술 분야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인문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현재의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증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진정한 힘은 인문학 내부에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인문학 관계자들의 성찰이 필요하다. 위기를 가져온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한국 인문학 내부에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문해볼 일이다. 그동안 인문학자들은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당대인들의 고통과 애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를, 또한 사회 구성원들과의 폭넓은 소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말이다. 사회와의 소통을 외면하는 고답적인 인문학 연구 풍토가 지속되는 한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최근 학문 경향을 수입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한에서는, ‘한국적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현실에 밀착하여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색해 나가는 한국 인문학자들의 분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