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 말은 19세기 미국의 매사추셋츠 농과대학 책임자였던 윌리암 클라크가 1876년 일본 삿포로에 설립된 농림학교 초대 교장으로서의 임기를 끝내고 고별연설을 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 후 그의 교육을 받은 많은 학생들은 일본근대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됐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삿포로 농과대학(현재는 홋카이도 대학)에 그의 동상이 세워지게 됐다. 일본의 어린이들은 그 젊은이들이 들었던 이 말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올해가 처음 일본을 방문한 지 꼭 20년째가 되는 해이다. 30년 전 대학시절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김소운 선생 외 8인의 ‘현대일본의 해부’와 수학자인 김용운 선생의 일본 관련 저서 등을 접하면서부터 지금껏 일본 관련 서적의 독서와 일본 여행이 취미가 돼왔다.

20년 전 1986년 당시 부산의 모 대학에 전임강사 2년차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지만, 일본을 방문해보고 싶은 희망은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해기사 실습선인 어선을 타기로 했다. 여권(여객)이 아니라 선원수첩을 가지고 선원자격으로 출국키로 선장과의 합의하에 승선이 수락됐다. 선원수첩 발급을 위해 부산 영도에 있는 선원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다. 항해의 전 일정(부산-도쿄-마닐라-싱가폴-카오슝-부산; 동지나해역의 50일간 항해)을 완료하는 조건으로 일본을 방문하게된 것이다.

7월말에 부산항을 출항해 도쿄항에 며칠 만에 도착했는가? 무려 열흘 걸렸다. 어선이니 가다가 어황이 좋으면, 투망을 해대니 그럴 수밖에. 당시는 유엔 해양법이 발효되기도 전이고 어자원이 풍부해 밤마다 싱싱한 회를 공짜로 배불리 먹을 수는 있었지만, 때가 때인지라 태풍을 피할 수 없어 그림의 떡과 다를 바 없었다. 선미와 선수가 마치 널뛰듯 했다. 왜 하필 이때 출항 하냐고 물었더니, 강한 해기사를 키우기 위해 일부러 항해시기를 태풍이 올라오는 무렵으로 잡는다나. 그 후 50여 차례 이상 일본의 여러 지역을 갔는데, 물론  배로도 자주 갔지만 열흘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는 비행기로 많이 갔다.

교수라면 누구나 비슷하듯이 나도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뭔가 찜찜해진다. 연구도 그렇고 휴가도 그렇고, 이도 저도 아니게 보낸 방학이 아쉬워서다. 마침 8월 하순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논문을 발표하기로 돼있었기에, 며칠간 일본 여행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번엔 첫 방문 20년 기념이란 의미에서 배로 가기로 결정했다. 국내엔 도쿄행 여객선이 없어 우선 오사카 항으로 가기위해 오전 10시 부산으로 내려가 오후 6시 출항해, 다음날 아침 11시에 오사카 항에 상륙했다. 어디로 갈까나? 누구의 책 제목처럼, 이 더위에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가자 삿포로로.

신오사카역을 오후 2시경에 출발한 기차로 그 다음 날 아침 7시 경에 삿포로역에 도착했다. 서울 집 문에서 나와 삿포로역까지 약 48시간 걸렸다. 그래도 20년 전의 경우 보다는 1/5 수준. ‘러브레터’에 소개된 오타로는 오후에 가기로 했으니, 역에서 걸어 15분 거리인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를 찾아갔다. 이른 아침의 홋카이도 대학은 구 제국대학의 명성과 품위를 지니고 있는 건물만이 아니라, 우거진 숲과 호수의 그 광대한 캠퍼스는 세계 유수 대학의 캠퍼스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이른 아침의 새콤한 공기와 청명한 하늘의 캠퍼스 내에서 발걸음은 어느새 클라크 동상 앞에서 머물렀다. 동상 옆의 “Boys be ambitious!”가 새겨진 거석.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아! 나도 Boy였고 야망도 컸는데. 20년 전 처음 일본 왔을 때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어선의 갑판에 서있는 나를 향해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 품었던 꿈.

저녁 7시20분 삿포로역을 출발해 다음 날 11시30분경에 도쿄 우에노역에 도착하는, ‘북두성’ 야간열차에서 창밖의 여명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Boys be ambitious” 이 말은 클라크 박사가, 야망보다는 소망이 어울리는 내가 아니라 4일 후 개강하면 만날 학생들에게 전하라고 내게 한 말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학회를 마치고 요코하마에서 규슈의 하카다까지 기차로 가서 하카다에서 배를 탔다. 부산으로 오는 도중 한일해협에서 창밖의 바다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Boys be ambit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