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원국 기자 (ok224@skku.edu)
한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된장녀 논쟁. ‘된장녀’라는 개념의 생성과정에서 근거 없는 여성비하와 수준 이하의 인신공격 등이 포함돼 결국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한 마초 집단의 유희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들을 걷어내고 나면 꽤 의미 있는 지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스타벅스’로 대변되는 대형 커피 체인점과 관련된 부분이다. ‘스타벅스 드나들기’는 대체 왜 된장녀의 필수 요소로 첫손에 꼽혔던 것일까?

된장녀 논쟁을 주도했던 이들은 소위 ‘된장녀’로 찍혀 마녀사냥을 당했던 그들이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가 허영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누구나 다 알만한 헐리우드 스타들이 스타벅스 컵을 들고 길거리를 다니는 모습이 파파라치 사진으로 전 세계를 떠돌면서 세련된 뉴요커라면 으레 가야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고, 이러한 시류에 휩쓸린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장기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도 유독 스타벅스를 비롯한 외국의 대형 커피 체인점만은 놀라운 성장률을 보이며 무섭게 매장을 확장해 가는 원동력이 오로지 스타벅스의 커피맛과 분위기에만 있다고 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즉 명품으로 인식된 스타벅스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성취감과 나르시시즘을 맛보게 되고 이는 곧 강박적인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경향이 위험한 진정한 이유는 스타벅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일명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데 있다. ‘맥도널드화’란 속도와 정확성, 자동화를 보장해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는 생산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효율성을 통해 전 세계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돈벌이의 수단으로밖에는 취급되지 않으며 문화적 다양성 또한 훼손되게 된다. 결국 맥도널드화는 신자유주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별다른 고민 없이 스타벅스를 소비하는 행위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긍정하고 무의식중에 이를 전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스타벅스에 정복당한 현재 우리나라의 카페문화는 본래 카페가 가진 ‘커피를 매개로 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과 아늑한 분위기가 있는 공간의 소비’라는 기능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부정적인 추세에 대한 대안으로 스타벅스에 밀려나 도시의 구석으로 숨어버린 우리의 전통찻집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늑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자신의 집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전통찻집은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서 대형 커피 체인점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진정으로 카페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우리의 전통찻집을 외면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