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과의 동행] 설치미술가 최정화 씨

기자명 김보미 기자 (bomi1022@skku.edu)

   
서울 종로구 낙원아파트에는 상상력이 크고 있는 인큐베이터가 있다. 플라스틱 소쿠리, 은박지, 봉제인형, 부러진 모빌 등‘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전에 전시됐던 작품들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는 이 곳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씨의 작업장이다. 때수건과 낡은 장난감 그리고 플라스틱 대야 등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를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시킨 최정화 씨. 그는 ‘만지지 마세요, DO NOT TOUCH’라는 굵은 글씨가 주는 엄격함과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기존 미술관의 고고함에 과감히 작별을 고했다. 대신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자 대중에 눈높이를 맞춰 그들의 삶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이렇듯 대중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진 최정화 씨를 만나 그의 작품 활동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보미 기자(이하:김)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됐던‘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전이 지난 달 막을 내렸다. 유난히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온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최정화(이하:최) 소재가 일상 곳곳에 있는 익숙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회는 가까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형물에 기초한 작품들이 많아 관객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대중에게 다가서기에는 네모난 캔버스 안에 제한적 도구로 그리는 회화보다 무한한 재료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조형예술이 더 쉬운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조형예술 분야가 더 좋다.

그러고 보니 대학시절에는 회화를 전공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담은 독특한 조형예술로 작품경향이 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듣고 싶다.
1985년 대학에 복학하기 전 다녀온 일본여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각 종 미술관, 갤러리 등을 둘러봤을 때의 답답한 느낌과 달리 일본의 재래시장에 있는 벽 한 켠을  메우고 있는 가득한 낙서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작품 속에 사람이 묻어나는 예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부대끼고 사는 모습에만 눈길이 가더라.

작품에 소쿠리와 인형, 동상이나 과일 등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인가.
그렇다. 나는 예술이 높고 먼 곳에 있어 일상과 괴리가 느껴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원래 예술의 목적은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인데 미술 전시관이 배운 사람들만이 정장을 갖추고 오는 곳으로 굳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관객이 눈과 머리를 굴리지 않고 순수하게 가슴으로 느끼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이러한 친숙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이었다. 워낙 골목길, 시장길을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주워 모으는 것을 좋아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소재들이나 작품 제작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이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
왜 없겠나(웃음) 수도 없이 많다.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전을 할 때 일이다. 전시회가 끝나고 청소를 하시던 아줌마가 작품으로 만든 소쿠리 하나를 얼른 빼내 챙기시더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드렸다.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나 싶었다.

플라스틱 소쿠리 같은 물건들은 한국 사람이 과거에 사용했거나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외국인들도 이런 것들을 보고 공감하는가.
물론이다. 외국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므로 함께 공감하고 느낀다.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느낌을 받아도 상관없고 한국의 독자들과 다른 것을 포착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 작품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다는 그 자체다.

작품에 총 천연색, 형광색을 많이 사용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일단은 총 천연색이 좋다. 지금도 형광색 셔츠를 입지 않았는가(웃음). 알록달록한 총 천연색들은 우리 민화가 가지고 있던 색이다. 그리고 약간 촌스러운 듯한 색감은 민중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민중의 삶을 드러내는 물건들을 모아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울긋불긋한 색깔의 작품이 많은 것 같다.

이렇듯 과감하고 파격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는 이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고급스러움과 천박함,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 흑과 백 이 모든 이분법의 극복이다. 그리고 내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이‘정말 이런 것도 예술이야?’라는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기존에 예술에 대해 갖고 있던 거부감을 버리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92년도부터 운영해 온 가슴시각개발연구소는 환경설치미술 및 설계를 하는 단체로 알고 있다. 현재 소장을 맡고 있는데 이 단체는 최정화 씨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다.
인간은 도시와 자연을 오가는 양서류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그것이 가진 넘치는 에너지로 도시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고 인간은 자연을 가꾸며 함께 살아간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만든 것이 가슴시각개발연구소다. 여기서 나는 양서류인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이 깃든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고 꾸미는 것이 자연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간섭하는 사람’그것이 최정화의 할 일인 것 같다. 그렇기에‘간섭자’야 말로 최정화를 가장 잘 표현해 내는 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