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으로 빚어낸 디지털 가상 세계, 게임

기자명 조원국 기자 (ok224@skku.edu)

컴퓨터의 발명과 함께 현대인의 대표적인 오락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게임. 특히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분야의 강국답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으며 게임을 제작하고 수출하는 데에도 활발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게임은 청소년 유해물이나 폐인을 양성하는 요소 등으로 평가절하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게임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인 동시에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게임인 <테트리스>. 단순함이 최대 장점인 <테트리스>도 과거 미국인의 소비생활에 대한 은유로서 연구돼 논문의 소재로 쓰인 적이 있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공포 액션 게임 <사일런트 힐>은 미국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청교도 의식의 발현 과정을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순한 오락 뛰어 넘어
이처럼 게임은 어린이들만의 유희라는 꼬리표를 떼고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게임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학술 연구를 하고 있다. 게임은 박사 과정의 커리큘럼에 들어가거나 연구 센터, 학회지 등에서 다뤄지면서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 당당히 하나의 학문으로 진입했다. 게임연구는 라틴어로 오락을 의미하는 단어 ‘ludus’에서 파생된 ‘Ludology’, 즉 게임학으로 불리며 학술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최근 서울대 경제학과는 온라인 게임 <거상>과 <군주>를 수업 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성일우 씨는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이나 즐기는 게임을 수업시간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으나 막상 해보니 의외로 경제나 정치생활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어 현실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거상>과 <군주> 등의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즉 다중접속자 역할수행 게임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장르이다. MMORPG는 인공적으로 구현된 가상 현실세계에 수천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해 마치 배우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아 움직이는 장르로 <리니지>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하는 유명한 게임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처럼 많은 사용자가 온라인 세계에서 함께 행동하는 MMORPG의 등장으로 게임은 더욱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현실 사회 닮은 MMORPG
MMORPG의 세계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공간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적 가상 세계이다. 그 속에서 유저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통해 사랑과 우정을 경험하고 때로는 분쟁에 휘말리기도 한다. 유명 게임 시리즈를 온라인화한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게임 속에서 타인을 죽이는 PK(Player Kill) 행위의 정당성을 놓고 논쟁이 벌어져 큰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다. 가상 세계의 질서와 그 자체의 기능을 중시하는 유저들은 PK 행위도 게임의 일부분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항하는 유저들은 게임 속 캐릭터도 결국 현실의 사람이므로 현실과 똑같이 예의와 도덕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논쟁으로 인해 벌어진 분쟁은 명확한 결론 없이 시간이 흐르며 사라졌지만 가상세계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던져줬다.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는 국지적인 분쟁을 넘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규모의 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특히 2004년 <리니지> 제1서버에서 벌어진 일명 ‘바츠 해방전쟁’은 아직까지도 유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냥터를 점거하고 세율을 높이는 등 독재를 일삼던 DK혈맹에 대항해 레벨이 낮은 유저들이 일으킨 민중 반란인 ‘바츠 해방전쟁’은 1년이 넘도록 이어지다 결국 해방군의 승리로 혁명을 이끌어내며 마무리됐다. 이 사건은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세계를 이룩할 수 있고 동시에 유저가 스스로 갈등 상황에 참여해 사회 정의와 자유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미래 인류의 모습 담겨
온라인 게임의 등장은 인류의 문명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게임학계의 세계적인 석학 에스펜 아세스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게임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만들어 낼 거대한 사회적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게임은 인류의 사회적 이상을 앞당겨 표현하고 있다. 경쟁이 이뤄지면서도 차별이 아닌 차이가 존중되는 도시. 국적과 나이, 종교를 초월한 진정한 우정이 존재하는 광장. 인류는 신에게 받은 세계에서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