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작 - 박인경(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5기)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하아.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습한 기운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도로위의 차들은 한증막 같은 도시의 빌딩 속에 갇힌 채 속절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당분간 불볕더위가 계속될 거라는 보도가 나오기가 무섭게 온도는 치솟기 시작했다.
‘미쳤나봐.’
9시 뉴스를 보던 아내는 독백처럼 내뱉었다. 뉴스의 첫 꼭지는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이글거리는 아스팔트가 늘상 메인을 장식했고 낮 시간 동안 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영상스케치가 뒤를 이었다. 더위는 밤에도 기승을 부렸다. 시집 못 간 노처녀 시누이가 이유 없는 성깔을 부리듯 한 낮의 열기를 품은 아스팔트는 밤이 되서야 참았던 뜨거운 숨을 내뿜었다. 사람들은 밖으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한강변은 가족단위 혹은 연인, 친구들과 함께 더위를 식히기 위해 몰려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숨이 막혀. 후아.’
최과장은 밭은 숨을 토해냈다. 밤늦도록 사람들은 한강 굴다리 밑으로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걸까. 인간의 번식력은 바퀴벌레의 그것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고 삶의 유일한 목적이 종족번식인 것처럼 마구 알을 까대는 놈들과 인간은 많이 닮아 있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직 쉬지 않고 까대야 했고 미쳐야 했는지도 모른다.  
  “걸렸어. 이번에는 확실하다니까.”
 최과장은 초초한 듯 담배를 연거푸 빨아댔다.
“확실한 거야?”
“그렇다니까.”
“저번처럼 다 빠져나가면 어떡해?”
“이게 재수 없게.”
여름은 본색을 드러냈고 잠 못 이루는 우리의 열대야는 계속되었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는 서울 시민들은 누가 밀어내기라도 한 듯 한강으로 쏟아져 나왔다. 최과장은 여전히 갈증이 나는 듯 세 번째 캔맥주를 까서 벌컥벌컥 들이키곤 빈 캔을 쭈그려 멀리 집어 던졌다.
“아 씨발. 술 오르네. 날은 왜 이렇게 더운거야.”
10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왔다는 멘트를 하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비장감마저 흘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러다 여름만 계속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더위는 식을 줄 몰랐다. 우리가 매입한 회사의 주가는 여름 날씨와 경쟁이라도 하는 양 끝없이 치솟았다. IMF이후로 처음이라고 했다. 천 포인트를 넘어섰다. 증권사에 근무한다는 최과장 친구의 권유로 급하게 오천만원을 융자 받아서 몇몇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했다. 아내는 투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소액을 투자할 때도 미친 짓이라며 말렸지만 미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아내는 몰랐다. 이미 아내 몰래 대출 받은 융자금의 이자는 바퀴벌레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알을 낳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매달 용돈을 아껴 그런대로 이자는 막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아내는 곧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그 전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모두 원상복구 해놓아야 했다. 최과장의 꼬임이 아니었더라도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매달 들어가는 대출금 상환에 네 식구 생활비를 대기에는 숨 막히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니까.   
아내는 우리의 이름으로 등기가 된 집을 처음 마련하고 소녀처럼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나는 새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가끔 바가지를 긁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괜찮은 아내, 그리고 네 살 박이 아들까지. 완벽한 대한민국 가정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조금 낡긴 했지만 늘 아내가 꿈꿔오던 마당이 있고 여름이면 감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꿈을 산산이 조각 낸 것은 다름 아닌 바퀴벌레였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자는 생각에 몇 번이나 집을 확인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고 당연히 주인은 바퀴벌레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하긴, 매매계약서 어디를 봐도 벌레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만약 그것이 의무조항이라면 부동산중개업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