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이 시작하고 몇 주 지날 때 쯤 나는 사진교육의 하나로 집회에 참여했다. 사진부 선배의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집회에 뛰어들었다. 카메라 바디에 망원렌즈와 광각렌즈를 번갈아가 끼우며 집회의 전반적인 모습과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냈다. 그 때 내가 촬영한 집회는 ‘한미 FTA반대 집회’였는데 그 곳엔 주류 언론을 포함한 많은 기자들이 함께 있었다. 그들의 카메라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안 좋은 카메라였으나 ‘아무렴 어떠랴. 내가 이렇게 뛰고 있는데, 이 카메라가 잘 담아내고 있잖아’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순전히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
집회자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다가 선배기자의 충고를 들었다. ‘어떤 경우에도 몸을 먼저 챙길 것 ’이란 문자였다. 폭력이 오고가는 집회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사진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잠시나마 로버트 카파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습겠지만, 이제 막 사진기자가 된 사람이 뭘 알겠냐고 되물어 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찌됐건‘사진 찍는 사람’이 아닌 ‘사진기자 ’였다.
난 현장에 있는 것이 좋아 사진부 기자가 되었고 이제 사진부 기자란 이름으로 현장 속에 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뛰어든 한 종군기자는 결국 지뢰를 밟아 죽었다. 나는 종군기자도 아니고 거창하게 아직 사진기자라고 말 할 정도도 아니지만 신문사에 ‘사진부 박은선 기자’로 몸담는 동안은 사진 한 장을 위해 학내와 사회 속에 뛰어들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이유이자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