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소영 편집장 (zziccu@skku.edu)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보도된 속옷 차림의 새내기들을 수십분간 교문 앞에 서 있도록 한 모 체육대학의 ‘속옷 신고식’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대학사회의 부끄러운 폭력의 잔재를 드러냈다. 기사가 보도된 후 네티즌들의 성토는 계속됐지만 정작 이러한 신고식을 진행한 학생 측은 오히려 ‘예전부터 전해져 왔던 전통’이라며 ‘선배와 후배를 친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자리’라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결국 대학 측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과 학생들과 교수들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비단 체육대학만의 문제가 아닌 이러한 신고식이 얻고자 하는 것이 그들 말처럼 ‘선배와 후배와의 친목도모’일까? 모멸감과 수치감으로 쌓는 친목도모가 진정한 ‘친목’은 아닐 것이다. 아마 가혹한 신고식이 얻고자 하는 바는 집단내의 ‘군기’라고 불리는 철저히 체내화된 복종이리라. 선배의 “군기 빠졌네”라는 말 한마디는 후배들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공포로 얼어붙게 만든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세기’에서 폭력은 강제적인 힘을 이용해 타인을 제압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비록 육체적인 손상을 입히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강제력으로 상대방에게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준다면 그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될 수 없는 폭력이다.

폭력은 힘의 균형이 평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형태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집단이 수월히 조직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당히 많은 수가 이것을 폭력에 의존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강자의 입장에서는 폭력만큼 약자를 통제하기 쉬운 도구도 없다. 누구나 대화로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때때로 문제에 부딪칠 때는 폭력의 편의성이라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가 힘들어진다.

폭력의 가장 잔혹한 점은 관습화 된 폭력이 인간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고 학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된 폭력은 대물림되고 어느새 집단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도구가 된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신입생 신고식, 해이해진 기강을 잡겠다며 강제로 실시하는 기합, ‘선배가 주는데 마셔야지’라는 말로 강권되는 술잔까지. 어느 곳보다 민주화돼야 하는 대학사회에서 아직도 폭력의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신고식이라는 구시대적 관습을 뿌리뽑겠다는 대학들의 움직임이 단순한 제스처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자유로워야 할 대학생활을 집단의 폭력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