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보미 기자 (bomi1022@skku.edu)

오묘한 푸른빛을 띠는 고려청자는 오백년 고려왕조의 화려한 모습을, 깨끗한 조선백자는 고고한 선비정신과 기개를 담는다. 그렇다면 막사발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투박하고 아무 기교도 들어가지 않은 그릇이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억압받고 소외받았던, 그러나 너무도 소박하고 진솔한 우리 민중의 정신이다. 이렇듯 민중의 희로애락을 담던 막사발을 30년 전부터 보듬어 온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김용문이다. 경기도 오산의 빗재가마터에서 만난 그는 상투를 틀어 올린 머리모양새와 덥수룩한 수염이 주는 도예가의 우직한 이미지와는 달리 무척 다정하고 친근했다. 

김보미 기자(이하:김) 막사발은 어떤 그릇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김용문(이하:용)
막사발은 딱히 무엇을 담는 그릇이라고 정해져 있지는 않다. 궁중에서 임금님이 사용하던 그릇들은 정확한 용어와 용도가 있고 그것들을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서민들이 사용하던 그릇인 막사발은 거기다 밥을 담아 먹기도, 막걸리를 떠 마시기도, 차를 식히기도 하는 등 그들의 생활 속에서 두루 이용됐다. 

김: 혹자는 막사발을 두고 말 그대로 ‘마구’ 만든 그릇이라고 칭한다. 당신이 막사발에 부여하는 의미는 어떠한가.
용:
나는 ‘막’이라는 접두사를 ‘마지막’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가마의 불기운 속에서 마지막까지 형태를 지켜낸 이 그릇에는 갖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의 불꽃을 꺼버리지 않았던 민중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한 막사발에는 뽐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 온 민중의 순수한 삶의 방식도 녹아있다. 그저 소박하기만 한 이 그릇을 두 손으로 가만히 들어보면 나즈막히 무게 중심이 느껴진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막사발의 무게에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높이는 우리의 오랜 예법이 투영되기에 나에게 막사발은 무척이나 특별하다.

김: 이러한 막사발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궁금하다.
용: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등요’라고 불리 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장작 가마였다. 장작 가마의 열기를 견디고 나온 우리의 막사발이 가스 가마에서 나온 일본이나 중국의 도자기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점차 막사발에 매료되기 시작됐다. 대학원 시절 맺은 막사발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이렇게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를 개최를 개최하기도 하며 예술 활동도 하고 있는 것 같다.

김: 시를 도자기에 아름답게 녹여낸 ‘시도자’ 역시 이러한 인연이 탄생시킨 작품인가. 
용:
그렇다(웃음). 시란 인간의 정서, 감정을 넘어 심지어 우주관까지 포함하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짧은 글이다. 특히나 민족시는 오랜 시간 민족의 감정에 호소해 온 서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김소월, 신경림, 백석 등 민족 시인들의 작품을 새기거나 형상화해 당시를 풍미했던 시대정신과 가치들을 담아보고 싶었다.

김: ‘시도자’라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용:
일차적으로 한국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정신문화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식민통치와 민족상잔의 비극 그리고 독재와 투쟁 등의 시간을 지내며 형성하게 된 공감대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시기를 거치며 나온 시들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정신문화를 우리 그릇인 막사발과 도자에 담아 오래토록 보존돼 후손들에게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다음으로는 우리 글 자체를 남기고 싶다. 서체로 볼 때 한글은 상하 종횡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예술 그 자체다. 이렇게 귀중한 문화예술인 한글을 우리 숨결이 담긴 흙에 기록해 두는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경건한 작업이며 행복이다.

김: 매년 개최해 오던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가 올해는 중국에서 열려 성황리에 끝이 났다. 이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용:
무한 경쟁체제로 접어들면서 국가 간의 간극이 더욱 커지며 세계인의 화합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모하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를 거치며 이러한 문화 축제를 통해서라면 평화적이고 자연스러운 화합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국가들이 가진 민족색을 함께 느끼고 체험해 가면서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우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  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에 대한 교류와 워크숍을 함께 하면서 우리 막사발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도 높이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도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김: 그럼 올해는 한국에서는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를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용:
아니다. 오는 5월 17일에서 23일 사이에 예년처럼 오산 빗재가마터에서 세계막사발장작가마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도자 작품을 비롯해서 각종 옹기와 토우 작품들이 전시될 것이고 제작된 도자기들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할 생각이다. 조금만 여유를 내어본다면 막사발을 직접 만들어도 보고 오랜만에 흙도 만져보고 하면서 한 쪽 구석으로 치워뒀던 우리 민중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