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승영 기자 (xiahandme@skku.edu)

제2차 세계대전은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를 광적(狂的) 소용돌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공포스럽고 답답한 전쟁의 현실 속에서 이탈리아의 조각 거장 마리노 마리니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 드러나는 인간의 불안과 긴장 그리고 희망을 조각으로 나타낸 마리니의 첫 국내 전시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마리니의 조각들은 말과 기수 그리고 여자 누드를 뜻하는 포모나를 통해 대전쟁의 암흑과 밝아올 앞날을 표현했다는 데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1930년 대 초반, 그러니까 전쟁 전 까지만 하더라도 온유하고 평화로웠던 말과 기수의 모습은 4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해 1946년에 창작된 조각 「말」에서는 그 형체마저 짓이겨져 알아볼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된다. 전쟁의 혼란 속에 상처 입은 인간의 모습은 마리니가 의도적으로 말 몸체에 표현한 긁힌 자국을 통해 가시화 되어 아픔으로 다가온다.

또한 어디로 달려야 할지를 잊은 듯 허공을 향해 멍한 빛을 띠고 있는 말의 눈은 당시 전쟁이 주었던 참혹함을 진실 되게 전달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절망과 불안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1954년 作 「기적」에서는 미쳐 날뛰는 말과 그의 요동치는 움직임에 이끌려 떨어질 듯 한 기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적으로 분열하는 그 둘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전쟁으로 남겨진 비극의 후유증을 앓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다고 마리니의 조각들이 전쟁의 아픈 상흔 속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마리니는 잔인하고 무자비했던 전쟁의 비극 끝에 찾아올 희망찬 새 날에 대한 기다림을 저버리지 않았다. 포모나는 그 풍만함으로 어머니, 대지, 다산의 이미지를 연상케 해 전쟁의 상흔을 치유할 힘을 발산하고 있다. 포모나 시리즈 중의 단연 수작으로 꼽히는 1941년 作 「포모나」는 풍성한 엉덩이와 가슴, 단단한 골격을 통해 육감적이지만 대지의 여신이 가지는 품위와 격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렇게 기마상과 포모나라는 테마를 통해 전쟁의 아픔과 새 날의 기적을 조각한 마리니의 작품들은 언뜻 똑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표정과 형상으로 전쟁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느낄 때, 당신의 귀에는 그 청동들의 뜨거운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일시: ~ 4월 22일
△장소: 덕수궁 미술관
△입장료: 일반 5000원,
                청소년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