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보미 기자 (bomi1022@skku.edu)

번화가라면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는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그마한 극장에조차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워 관객과 만나는 것이 힘겨운 영화들도 너무나 많다. 독립 다큐멘터리도 그런 수많은 영화들 중 하나다. 80년대 후반부터 아무도 보지도 귀 기울이지도 않은 현실을 담아온 독립다큐멘터리. 이러한 독립다큐멘터리가 자신들의 축제에 관객을 초대했다. 축제 기간 내내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인디다큐페스티발2007,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축제가 벌어진 곳은 바로 낙원상가 4층의 서울아트시네마다. 지난 달 30일부터 시작해 5일 동간 계속된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은 여느 때 보다 내실 있는 행사들로 그 풍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사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과 대화가 축제 분위기를 한껏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3월 30일, 드디어 시작!
오후 6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는 7시에 열릴 개막식을 보러 온 사람들로 이미 북적이고 있었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의 개막작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관과 마찬가지로 티켓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공하는 모든 티켓의 가격은 일반 영화관과는 달리 ‘관객이 내고 싶은 만큼’이다. 꼭 많은 돈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기에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또 기분에 맞춰 돈을 낼 수 있다.   

개막식의 시작은 밴드 캐비넷 싱어롱즈의 유쾌한 공연이다. 트럼본과 아코디언 등 각각의 악기를 가지고 독특한 음률의 노래를 시작한 이들의 공연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끊인 줄을 모른다. 이들 밴드의 공연이 끝나자 개막작 소개가 간단히 있었다. 여기서 개막작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영화가 두 시간 반씩이나 되는데 아무쪼록 영화제의 흥행에 문제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유머러스한 소감을 밝혔다.

‘송환’은 한국 전쟁 때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돼 장기수로 살아가면서도 공산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메라는 이념과 사상, 남과 북이라는 민족적 상흔을 주위를 맴돌면서도 장기수들에 대한 진득한 애정을 빠뜨리지 않는다. 다큐가 끝날 때쯤이면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다큐가 보여주는 진실의 기록은 관객의 감동으로 녹아내려 작은 상영관 속 분위기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4월 1일, 독립다큐가 나아가야 할 길
황사가 유난히 심했던 일요일, 오후 2시부터 독립다큐의 현재를 바로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오픈세미나가 광화문 일민 미술관의 미디액트에서 열렸다. 독립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약 10여명이 모여 시작된 토론회의 분위기는 매우 진지했다. 독립미디어센터 진주지역 사무차장 김설해 씨는 “지방은 제대로 된 독립영화 상영관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독립영화 상영을 위한 제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방에서 독립영화나 다큐를 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몇몇 지역끼리 연합해 대규모 상영관을 빌려야 겨우 관객을 찾아갈 수 있는 실정이라니 지방의 사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방의 너무도 열악한 상연 현황에 잠시 세미나 장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곧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의점을 옮겨가 다시 열띤 토론이 일었다.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설립추진위원장 원승환씨는 “독립영화 진흥을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고 말해 토론에 참여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의 제안에 인디다큐페스티발2007 집행위원 허경 씨는 “현재 독립영화계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형이지만 점차 각 지역들이 독립적인 상영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킨 후 분산형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충했다. 약 두 시간 반에 걸친 논의는 ‘좀 더 개방적이고 다층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서자’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오랜 회의로 조금은 지친 모습의 춘천영상동공체 고수정 씨는 “오늘 나는 독립 영화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용기를 얻어간다”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4월 2일, 베두인 흑인 여성의 유쾌하지만 슬픈 비밀
월요일이라 조금은 한산한 분위기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바로 해외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경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수업’ 때문이다. 이 영상은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베두인 사회에서의 흑인이 받는 일상적 차별을 영화수업을 받는 흑인 베두인 여성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공공연히 ‘노예’라고 불리는 그들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수동적이고 슬픈 과거에서 벗어나 솔직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단연 유쾌함이다. 오랫동안 감춰왔던 슬픈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흑인 베두인 여성 특유의 낙천성이 영상에 묻어나와 전혀 어둡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베두인 흑인 여성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비춰지는 그들의 슬픈 눈망울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4월 3일, 아듀 인디다큐페스티발2007
이제는 인디다큐페스티발2007과도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폐막식을 찾은 사람으로 행사장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폐막작을 보기위해 지하철을 타고 꼬박 두 시간을 왔다는 배미경(32) 씨는 “집이 분당이라 개막식과 폐막식 밖에 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며 울상을 지었다.

오후 7시에 시작된 폐막식은 개막식보다 단촐 했다. 두 명의 사회자들의 아쉬운 폐막사가 끝나자 곧바로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의 마지막 작품인 ‘쿠바, 천국의 가치’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1959년 쿠바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 혁명을 목격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이들의 증언에 따라 숨 가빴던 혁명의 과정을 밟아가다 보면 어느 새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로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현재의 쿠바에 도달하게 된다. 과거의 혁명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 쿠바의 아름다운 풍경이 교차된 영상에 관객들은 지금은 박제돼 희미해 져버린 혁명의 낭만적 향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검은 화면이 뜨면서 자막이 올라오자 객석 여기저기서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에서는 영화, 사람, 티켓 등 여느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영화제의 달이라고도 불리는 4월, 하루쯤은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영화제를 방문해 느긋하게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