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소영 편집장 (zziccu@skku.edu)

지난 13일, 서울 북부지역 대학생들이 함께 국립 4.19 묘지까지 달리는 ‘4.19 떼지어 달리기’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다. △4.19 혁명정신 계승 △교육의 공공성 확보 △대안의 사회가치 창출이라는 기치를 걸고 열린 이번 행사는 6백여 명의 대학생이 참여했다고 한다. 올해로 47돌을 맞는 4.19 혁명은 학생들이 나서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목숨을 던져 실천했다. 이때 목숨을 건 4.19 혁명을 겪은 청년층은 419 세대라 불리며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초석을 놓았다.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세대(Generation)란 17세에서 25세 사이 청년기에 어떤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받아 특정한 의식·문화·지식을 가지게 되는 동일한 혹은 유사한 인구집단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처럼 한 무리의 인구집단이 ‘세대’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계기는 그들이 청년기에 겪은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청년기에 중요한 사건을 공통적으로 경험한 인구집단들은 그들의 사고, 감정, 판단, 행동의 필터로서 작용하는 공통적인 ‘경험의 퇴적층’을 공유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이름 붙이는 ‘△△세대’는 바로 청년기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419세대, 386세대라는 이름은 이 세대가 경험한 치열한 민주화 운동과 역사적 격동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2007년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선배들의 투쟁의 결과 이룩한 제도적 민주화 시대에서 우리 세대는 과거의 청년들이 경험한 치열했던 역사적 경험과 공동의 저항이 부재했다. 공유할 ‘경험의 퇴적층’이 없는 우리 세대를 하나로 묶을 수식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대신한 신자유주의 시대와 무한 경쟁 사회는 우리를 자기 보신에 매달리게 해 개개인을 모래 알갱이처럼 분산시키고 있다. 대학생의 탈정치화, 사회 이슈들에 대한 관심 부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청년들의 참여를 요구하지 않는 시대는 없다. 오늘날, 향후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한미FTA가 타결되고 교육의 공공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공동의 관심과 참여는 아직 절실하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세대로 불리게 될까. 신자유주의 세대, FTA 세대가 우리를 수식하는 이름이 될 것인가, 아니면 419세대의 정신을 잇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 것인가. 그 선택과 역할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