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보미 기자 (bomi1022@skku.edu)

교정은 봄기운이 한창이다.
어느 샌가 우리 곁으로 다가온 봄은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으로 그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봄 햇살이건만 바쁜 수업 시간표와 밀린 과제들
그리고 다가오는 중간고사에 대한 압박은 이러한 진풍경을 마음 놓고 즐기도록 쉽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아름답고도 찬란한 ‘봄’이지 않는가. 하루 쯤 학업과 취업, 시험 등 각종 복잡한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고즈넉한 삼청동 이곳저곳을 거닐며 완연한 봄기운에 몸을 실어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삼청동 나들이를 마음먹었다면 우리 학교 인사캠 후문으로 올라가 2번 마을버스를 타자.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오다 보면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마침 바람이라도 살랑 불어 준다면 분홍색 꽃비를 맞을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 감사원에 다다른 버스에서 내려 쭉 걸어 내려가면 서울의 숨겨진 벚꽃명소 삼청공원이 기다리고 있다. 삼청공원에는 벚꽃 뿐 아니라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한 개나리와 은은한 향기로 꿀벌를 유혹하고 있는 청초한 모습의 진달래를 비롯한 갖가지 꽃들이 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키 큰 나무들의 푸르름을 빛나게 하는 가운데 여유로이 산책하는 사람들과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은 봄의 한낮을 더욱 생기발랄하게 만든다.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윤순기(74) 할머니는 “노인들이 운동하기에도, 산책하기에도 딱” 이라며 한껏 웃음을 짓는다. 생각보다 꽤 넓은 공터에 걸친 삼청공원에는 구석구석 볼만한 것들이 많다. 기구들로 가벼운 운동도 하고 아담한 정자에 누워서 하늘도 한번 보고 작은 매점에서 군것질도 하다 보면 메마르고 갈라져 아팠던 일상이 따스한 봄의 낭만으로 채워지고 있다.

삼청공원에서 봄의 전경을 마음껏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삼청동 구경에 나서보자. 삼청동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신기하고 독특한 물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은 화랑 앞에 놓인 작품의 그늘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커다란 개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김희동(23) 씨는 “삼청동에는 특이한 것들이 많아 사진 찍을 맛이 난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렇듯 삼청동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인 장식품이나 동물들조차도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특별함 가득한 곳이다.

삼청동 길에서 자유로운 모던함이 느껴진다면 숨겨진 골목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숨겨져 있다. 가회동과 삼청동에 걸쳐진 북촌 한옥마을이 바로 그것이다. 어찌 보면 어색한 모습이겠지만 실제 삼청동에 공존하는 전통과 현대는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골목 구석구석이 모두 구경거리일 정도로 별천지인 이곳은 ‘정말 사람이 살고 있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이렇듯 한옥들이 한적히 즐비한 곳을 거닐다 보면 간혹 내부를 공개해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집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민화전시가 한창인 가회박물관은 한국 내음새가 물씬 풍기는 마당과 방 한 켠이 전부이지만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차 한 잔의 정성도 대접 받을 수 있는 사랑방이다. 여유를 찾아 뗀 발걸음인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동화돼 마음이 차분해 지며 사색의 늪에 잠길 수 있다.

한옥마을을 나서서 정독도서관 앞을 지나 큰 길로 내려가면 삼청각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이 버스는 교통이 불편해 찾기를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정해진 장소와 시간이 있어 삼청각을 방문할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원래 삼청각은 7.4 남북공동성명 직후부터 국빈의 접대와 정치 회담의 장소로 쓰여 한국 요정정치의 산실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서울시가 매입한 후 지금은 공연과 전시가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인형과 매듭 같은 각종 규방공예와 관련된 강의도 하는 전통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단 삼청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바로 일화당이다. 일화당의 앞뜰에는 두 그루의 목련나무가 있는데 둥글고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작은 담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작은 담장 아래로 난 쪽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한옥 별채들이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살며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인적이 뜸한 뒤뜰에 자리한 별채들은 조금 쓸쓸한 듯하지만 호젓하면서도 수려한 풍채를 잔잔하게 펼치고 있다. 삼청각에는 이러한 전통 건물들 외에도 동서양 악기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향연이나 연극 등도 관람할 수 있는 문화공간도 마련돼 있다.

봄 내음 가득한 삼청동에는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한 구석에 접어둔 사색과 여유로움과 느림이 있다.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쉬운 봄날이라면 편안한 차림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삼청동 거리를 거닐어 보자. 지하철과 버스에서 벗어나 두 발로 경쾌한 발걸음도 내딛어 보고 봄바람도 쐬고.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