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에 담긴 현실의 모색

기자명 김보미 기자 (bomi1022@skku.edu)

저명한 학술지에나 실리던 것인 줄 알았던 문화평론이 언제부터인가 웹진이나 각종 포털 사이트에 게시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권위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는데 이제는 일반 대중들까지 그 창작 범위를 확대했다. 가장 크게는 순수예술에만 머물던 평론이 점차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콘텐츠를 다루게 됐다. 이렇듯 평론문화는 어느새 대중화 물결을 타고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한 걸음 우리에게 다가선 평론문화가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부터 그 흥미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평론, 너는 누구냐

일반적으로 ‘평론’이라 하면 가치나 선악, 우열을 사회 전반에 투영해 작품을 논하거나 평가하는 장르를 통틀어 말한다. 쉽게 생각해서 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에서 이 시대의 셀러리맨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평론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글들 중에서도 성격을 달리하는 수많은 평론이 있다는 사실! 우선 학술적 성격이 강하거나 평론 자체를 지적 담론의 소재로 삼는 저널 비평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읽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는 굉장히 주관적인 비평의 형태로 오히려 감상문에 가까운 평론도 존재한다. 수평선의 양 끝에 앞서 말한 두 가지 종류의 평론이 위치시키고 보면 바로 그 가운데에 각기 다른 성격의 평론들이 스팩트럼처럼 자리하게 된다. 하지만 스펙트럼의 경계가 칼로 나눈 것 마냥 정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글이 가진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리뷰는 어디에 속하는 것이며 평론과는 다를까. 요즘 들어 인터넷 상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리뷰는 실제로 평론과 다른 별개의 어떤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 우리 학교에서 글쓰기와 실재 과목을 담당하는 김성수 교수는 “리뷰(Review)는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보고 평을 한 프리뷰(Preview)와 구별되는 개념”이라며 “누리꾼들에 의해 쓰여 지고 공유되는 리뷰 역시 평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한 걸음 더

누구나 한 번 쯤은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공간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을 쓰거나 나름대로 내린 평가를 써 본 혹은 그러한 게시물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디어 몹이나 이글루스, 티스토리 같은 경우가 바로 이러한 개인 미디어를 통해 평론활동을 하고 있는 유저들을 한데 모아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형태이다. 이에 대해 IT문화평론가 김정희 씨는 “이러한 사이트들은 일명 ‘멀티 블로거’로 불리며 그 커뮤니티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웹진과 포털사이트에서도 평론 문화는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네이버의 경우 책이나 영화에 대해 좋은 평론을 쓴 블로그 유저를 선정해 포상하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대중문화 전문 웹진 가슴이나 매거진T 그리고 채널 꺄뜨르 같은 사이트들을 통해 공개되는 글도 평론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것들 중 대표급으로 꼽히는 매거진T은 다양한 필진들의 칼럼이 단연 돋보인다. 이 웹진의 특징은 대중문화 전문가가 글을 쓰기도 하지만 요리사, PD, 인터넷 만화가 등 비 전문가들이 자신만의 특성을 살린 평론을 고정적으로 연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렇듯 전문 대중평론가와 아마추어 평론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현재 평론계의 가장 크고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좋지 아니한가 혹은 그 반대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에 의해 탄생한 평론들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긍정적 또 부정적인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단 긍정적인 면으로 고급예술계에서만 향유돼 오던 평론문화가 대중예술에까지 넘어와 일반인들도 그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평론 문화의 대중화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고 결국은 문화적 평등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평론문화는 소비에만 그치던 수용자들을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적극적 생산자로 돌려놨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로써 대중들은 그들 스스로가 방송계로 하여금 수용자의 반응에 민첩하 게 대처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꾀하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넘쳐나게 된 평론은 그것이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정한 잣대 없이 그저 감정에 근거해 탄생한 요즘의 평론은 신뢰성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인기가 떨어지면 평론도 금방 가치를 상실하게 되어 지속적인 피드백을 이루지 못하는 현상 역시 현재의 평론문화가 가진 맹점이다. 또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프로그램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무한도전이나 거침없이 하이킥 등 현재 주가를 올리며 인기리에 방영중인 프로에 대한 리뷰는 개수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만큼 많다. 평론가로부터 시작해 바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까지 모두들 이러한 평론에 반응하고 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 씨는 “이렇기에 시청률이 높은 프로는 더욱 관심을 받게 되고 아닌 프로는 대중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풍토가 생겨나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평론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평론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까. 평론가 강명석 씨는 “평론을 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프로그램을 직접 보라”고 말한다. 먼저 프로그램을 본 후 평론을 본다면 혹 상반된 평가를 내린 두 글이나 각기 다른 논조를 가진 글을 여러 개 접하더라도 심한 혼란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것을 보고 즐길 줄 아는 자세도 중요하다. 모름지기 어떤 것을 두고 좋다 혹은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신이 봤을 때 공감할 수 있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되짚을 수 있다면, 또 다시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준다면 그 평론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니 거창한  것을 얻어야 한다는 괜한 마음을 버려도 좋다.